
최근 경기가 매우 부진하다. 경기 불황의 그늘은 언제 걷힐지 알 수 없다. 고금리·고물가 기조와 경기 침체 여파로 지역 상권은 이미 무너질 대로 무너져 한 집 건너 한 집마다 임대 현수막이 붙은지 오래다. 주요 도심의 골목상권마저 버티지 못해 자영업자의 폐업이 속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다 죽어가는 공간’에 숨결을 불어 넣는 지역 상인들이 있다. 유동 인구가 적은 동네의 낡은 공간을 개조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활력을 불어넣고 상권을 회복시키고 있는 울산 소상공인들을 소개한다.
울산 남구 장생포 고래박물관 앞 도로를 지나 골목 안으로 1~2분 걸어 들어가야 하는 장소에 폐페인트 공장을 고쳐 만든 카페가 있다. 인근 상권에서 걸어서 5분 정도 걸리는 거리임에도 점심때만 되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긴 줄이 생긴다. 인근 중소기업 대표들부터 공공기관 직원들까지 모두가 즐겨 찾는 장생포의 사랑방 ‘모비커피’다.
‘모비커피’를 운영 중인 손자원씨는 대학 졸업 이후 장생포에서 고래빵을 만드는 부모님을 돕다가 ‘장생포에서 함께 일해보지 않겠냐’는 부모님의 제안으로 6년 전 흔히 말하는 ‘중심상권’인 장생포 고래박물관 앞 도로변에 첫 가게를 열었다.
그가 처음 문을 연 가게의 주 판매 상품은 브런치였다. 점차 늘어나는 장생포 관광객들과 근처 직장인들을 타깃으로 잠봉뵈르와 비건빵 등 울산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메뉴 개발에 온 힘을 쏟았다. 그러나 신메뉴를 출시할 때마다 일시적으로 잠깐 방문자가 늘 뿐 지속적인 수입을 내기 어려웠다.

이에 더해 높은 임대료와 메뉴 개발을 위한 재룟값을 감당하기 어려워 2년만에 결국 가게 문을 닫았다. 그러나 장생포를 떠나고 싶지 않았던 손씨는 도로변 건물보다 월세가 절반 가까이 저렴한 골목의 한 폐페인트 공장 건물을 발견하고, 2주간의 공사 끝에 두 번째 사업을 시작했다.
손씨는 장생포 상권에서 2년간 자영업을 하며 느낀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상권 내 주거지 부족을 꼽았다. 첫 가게를 운영할 당시 5~10분 거리에 머물 수 있을 만한 주택지가 없어 매일 아침 긴 시간을 이동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게를 옮기게 되면서 공장 건물 1·2층을 모두 사용하게 돼 주거 문제가 해결됐다.
그러나 임대비용은 줄었지만 매일 같이 지게차가 드나들던 공장을 카페로 사용할 수 있도록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루 빨리 가게를 다시 개업하고 싶은 마음에 손씨는 2주가량의 짧은 공사기간 중 직접 벽에 페인트를 칠하고, 드문드문 긁힌 자국이 있는 미끄러운 공장 바닥은 새로 시공하는 대신 장판을 깔아 정리했다. 가구는 이전에 사업을 하면서 알게 된 장생포 주민 목수에게 부탁해 직접 제작하기도 했다.

그는 장생포에서 브런치 카페를 했던 경험이 현재 사업장을 운영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비싼 수업료를 들였지만 그 영향으로 보다 더 신중하게 도전한 두 번째 가게는 어느덧 4년째 지역 주민들로부터 꾸준한 사랑을 받는 가게가 됐다. 가게를 열 때만 해도 하루 매출이 겨우 20만원 남짓이던 작은 카페에서 매년 적어도 20%씩 매출이 늘고 있다.
손씨는 “오후 1시 전에는 인근 기관 직원들이 주로 찾아오고, 오후 1시 이후엔 장생포 내 기업 대표들이 주로 방문한다”며 “직장인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특별한 음식을 찾기보단 저렴하고 일상적으로 먹을 수 있는 빵과 커피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첫 폐업의 아픔을 겪으며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어 사업을 뒤따라 시작하는 후배 자영업자들에게 “상권의 특성을 치열하게 분석하고 연구해 그들의 필요에 맞는 아이템을 준비해 간다면 유동 인구가 적은 거리에서도 충분히 빛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은정기자 k2129173@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