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대형사고와 응급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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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대형사고와 응급대처
  • 경상일보
  • 승인 2024.07.3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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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성현 울산병원 이사장

대략 십년 정도 전, 경기도의 한 대형병원을 견학하던 중 큰 필로티(천정) 형태에 급수시설을 갖춘 응급실 입구를 봤다. 그곳을 그렇게 만든 목적은 화학공장 폭발사고 등으로 인해 유해물이 묻은 인원들이 대량으로 왔을 경우, 혹은 전쟁시 화학무기 등이 묻은 차량이 왔을 경우 제독을 위해 한꺼번에 천장에서 물을 틀어 유해한 물질들을 순식간에 씻어내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순간 느꼈다. 대형병원이 그런 역할까지 대비해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알아도 실감하진 못하고 있었다는 걸 말이다. 배운게 많은 경험이었다. 해당병원은 사립병원이지만 경기도와 협약해 다양한 지원사업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며칠전, 울산의 한 공장에서 불이 크게 났다. 필자는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 이번엔 인명피해가 없어서 다행이었지만 만약 그런 대형 사고로 인해 대량 인명피해가 발생한다면 울산지역에서 얼마나 대처가 가능할지 모르겠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주제를 3년전 본지 2021년 7월 칼럼에서 이야기한 바가 있다. 당시 해당 내용을 요약하면 울산 중구에서 난 화재에 소방사 한분이 크게 화상을 입으셨는데 울산에는 화상병원이 없기에 치료를 위해 부산에 있는 화상병원까지 후송하게 되었으며, 공공의료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시점이었기에 만약 생긴다면 이런 지역적 요구도를 고려해줬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우리 지역이 가진 숙제 중 하나였다.

3년이 지난 지금은 그 때의 숙제를 해결했을까? 안타깝지만 아니다. 화상환자가 발생했을때 응급처치 및 일부 치료는 가능할 것이다. 실제로 필자가 일하는 울산병원도 일반외과에서 화상환자를 일부 케어하고 있다. 그러나 심한 화상환자를 계속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은 울산에 여전히 없다. 최악을 가정해 며칠전 화재가 만약 대량 인명피해를 발생시켰다면 우린 어떻게 대응을 했을까?

한가지 확실한 건 아마도 지역 모든 병원의 의료진들이 최선을 다 했을 것이라는 거다. 의사, 간호사 등 의료직 종사자는, 적어도 필자가 아는 사람 중 대부분은 위기가 있을 때 앞뒤 안가리고 현장에 뛰어든다. 그러나 이건 개인이 아닌 시스템의 문제이기에 그런 대량 인명피해 환자들을 우리지역이 제대로 치료하거나 적절하게 조치한 후 다른 지역으로 후송을 잘 보낼 수 있을까 생각하면 답하기 힘들다. 일단 화상을 전문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병원도 없고 연기로 인한 가스중독 및 기도화상을 케어할 수 있는 병원도 없다. 그래서 3년전 숙제는 아직도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

왜 그럴까? 필자가 답할 수 있는 내용이 극히 적다. 공공의료원이 생길지도, 생긴다고 해도 이런 부분들을 고려해 줄지도 모르겠다. 이 문제를 민간 사립병원들이 해결해야 한다는 것도 맞지 않는 말이며 필자가 그런 말을 할 자격도 없다. 그리고 지금 한국 의료계는 지역상황을 챙기기 힘든 큰 혼란을 겪고 있기에 현재 논할 수 있는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이에 대해 일개 병원 입장에선 그저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역량 안에서 조금씩 준비하는 게 최선이고, 또 그리하고 있다. 경기도의 그 병원을 본 기억으로 필자는 울산병원의 응급실 옆에 제독함이라는 장비를 설치했다. 그 병원처럼 대규모 세정은 할 수 없더라도 작은 규모의 인원이 온다면 비슷한 조치를 할 수 있기 위해서다. 최근에는 일부 화상환자 및 가스 중독환자 치료에 사용할 수 있는 3기압의 고압산소 치료기를 시의 지원사업으로 들일 예정이다. 울산내 종합병원들 중 유일하게 설치되는 것이지만 작은 장비라 활용에 한계는 있을 듯 하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할 수 있는 일들을 할 뿐이다. 언젠가 풀릴 방도가 어떻게든 생기길 바라면서. 그리고 이렇게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있는 곳은 필자의 병원만이 아닐 것이다.

임성현 울산병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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