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시론]2004년 밀양 성폭력 사건부터 2020년 n번방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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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시론]2004년 밀양 성폭력 사건부터 2020년 n번방까지
  • 경상일보
  • 승인 2020.04.02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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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건 ‘미성년자 성착취’란 공통점
적극적인 피해자 보호 방안 강구하고
가해자 처벌 강화로 세계적 모범 되길
▲ 이미영 울산여성가족개발원장

밀양 성폭력 사건은 밀양의 남고생 44명이 여중생을 1년간 집단 강간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검찰은 성폭력에 직접 가담한 44명 중 10명만 기소했고 20명은 소년부에 송치했으며 나머지는 합의했거나 고소장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풀어줬다. 특히 기소된 10명 역시 2005년 울산지법에 의해 소년부로 송치됐지만 보호관찰 처분 등을 받는 데 그쳤고, 44명 중 단 한 사람에게도 전과기록조차 남지 않았다. 울산지역에서는 2004년 12월 밀양 성폭력 사건 대책위원회를 결성하여 대책위원장으로서 약 7개월간의 대책위원회 활동을 펼쳤으며, 활동의 결과는 피해자 지원과 성폭력특별법 일부 개정의 성과만을 가져온 채 마무리되었다. 피해자는 결국 고등학교를 자퇴했고 극단적인 시도를 여러차례 감행했다.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조차 우리의 관심속에서 사라져 알 수 없는 상황이다.

2004년 밀양 성폭력 사건 이후 크고 작은 성폭력 사건이 계속 보도되었으나 제대로 된 엄정한 처벌은 이루어지지 못한 채 밀양 사건 이후 16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2020년 3월 n번방, 박사방과 같은 낯선 단어가 뉴스에 등장하였다. 그 실체를 알아갈수록 참담함과 두려움, 분노와 무기력한 감정이 밀려들었다. ‘미성년자 등을 협박해 찍은 성착취 동영상을 텔레그램에 유포한 혐의’라고만 범죄행위를 적기(摘記)하기에는 그 잔혹함과 악랄함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는다. 그 모든 것을 방조하고 즐기기까지 한 26만명(중복가입 포함)에 이르는 이른바 ‘유료회원’이라는 그들도 범죄의 중함은 다르지 않다. 성과 관련된 사건, 사고, 범죄 등이 간혹 호기심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과거와는 달리, 이번 사건은 누구도 쉽게 대하지 않았고 적극적 가담자뿐 아니라 관련된 모든 이들을 철저하게 밝혀 처벌하고 신상을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n번방 용의자 신상공개 및 포토라인 요구, n번방 가입자 전원 신상공개, n번방 운영자들과 가입자 전원 처벌 등 n번방 관련된 청원 동의자 숫자는 현재 500만명을 넘어서고 있다. 이 숫자 역시 이번 사건의 충격과 심각성의 방증일 것이다.

이 사건의 심각성과 잔인함은 더 이상 언급하고 싶지 않다. 다만, 수사가 시작된 지금, 꼭 당부하고 싶고, 강조하고 싶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 피해자 보호이다. 현재까지 밝혀진 피해자만 75명, 그 중 미성년자가 16명이라고 한다. 얼굴뿐 아니라 개인정보까지 공개된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외국의 증인보호프로그램처럼 신분(주민번호), 국적변경, 직장, 거주지 제공 등 전례 없었던 모든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두번째, 유독 성범죄자에게 관대한 우리 사회의 모습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많은 성범죄자들이 ‘반성하고 있고,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초범이다,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를 했다’ 등의 사유로 턱없이 관대한 처벌을 받았다. 이번 사건과 유사한 다크웹 사건을 예로 들어보면, 다크웹은 아동 성착취물을 공유했던 세계적 사이트였고, 국제적 공조수사로 운영자를 검거하고 보니 20대 한국 남자여서 우리사회에 충격을 주었던 사건이다. 당시 1심 집행유예, 2심 1년 6개월을 선고 받았고, 다음 달이면 출소한다고 한다. 그 당시 양형 사유 중 하나가 위에 나열한 감형사유와 함께 ‘혼인신고를 하고 부양할 가족이 있어서’라는 게 그 이유였다. ‘n번방’ 운영자로 현재 재판을 받고 있는 와치맨도 1심 구형이 3년 6개월이었다. 너무나 관대한 처벌이다.

디지털을 매개로한 성범죄는 이미 ‘팬데믹’ 상황이다. 신종코로나의 방역과 관리에서 우리나라의 방역 관리수준은 세계적인 모범사례로 언급되는 것처럼, 성착취 영상과 관련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수사와 처벌, 관련 법 제정과 개정, 나아가 디지털 성범죄 예방을 위한 사회적 노력까지 세계적인 모범사례가 되었으면 한다.

신종코로나 방역처럼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아직도 운영 중인 유사한 ‘n번방’들을 찾아내기 바란다. 가담과 행위 정도에 따라 처벌 수위가 달라질 수 있지만 ‘n번방’과 관련된 이들에 대해서는 엄정한 법적 처벌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늦었지만 이제는 우리 모두가 한국사회의 성범죄에 대해 단호한 처벌을 요구하여 성범죄 없는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갈 때이다. 이미영 울산여성가족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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