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계·시공사 선정 마쳤지만
세밀한 조사없이 졸속 추진
2000㎜ 공업용수관 단수문제
수자공, 日 1000억 손실 반발
울산시-도공 ‘네탓 공방’만
지난해 시공사까지 선정되면서 순항중인 줄 알았던 ‘울산~언양고속도로 범서하이패스IC 설치 사업’이 첫삽도 못뜨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5년째 제자리 걸음으로, 한국도로공사와 울산시의 졸속행정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라는 평가다. 그럼에도 양 기관은 시민들의 편의와 교통정책보다는 ‘네탓’ 공방전만 펼치면서 각종 부작용만 양산하고 있다. 범서하이패스IC가 공공재로 울산시민의 숙원사업이라는 점에서 본보는 2편에 걸쳐 문제점과 해결점을 집중 점검한다.
◇6개월째 멈춰선 범서하이패스IC 공사
13일 울주군 범서읍 인근에 자리잡은 범서하이패스IC 설치 현장사무소에는 한숨만 흘러나온다. 지난해 9월말 한국도로공사가 발주한 공사를 낙찰받고도 6개월째 개점휴업 상태이기 때문이다. 시공사인 세영종합건설은 귀책사유도 없이 한달에 5000만원의 경비 손실을 입고 있다고 한다. 실시설계를 준공하고, 시공사까지 선정된 범서하이패스IC 설치 사업이 전면 중단된 배경은 뭘까.
울산시는 국토부의 도로결정고시가 늦어졌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다른데 있다. 범서IC는 하이패스 전용이다. 하이패스IC는 나들목 간격이 멀거나 우회거리가 길어 고속도로 접근이 불편한 지역의 접근성 개선을 위해 고속도로 휴게소 또는 버스정류장 등을 활용해 하이패스 전용으로만 운영하는 IC다. 하이패스IC는 고속도로 교통 혼잡(V/C 0.8 이하) 및 안전에 문제가 없고 경제적 타당성이 확보(B/C 1.0 이상)된 지점에 한해 이뤄진다.
하이패스IC는 설치시 주변 지역 접근성 개선으로 주민 편익이 클뿐 아니라 지역발전의 호재가 돼 지자체와 도로공사가 설치비용을 분담한다. 분담 비율은 과거 지자체 몫이 높았지만 요즘은 5대5 수준이다.
울산시는 지난 2015년 2월 범서IC 설치를 국토교통부에 신청했다. 시가지 외곽인 범서읍 천상리에서 교통량을 분산해 남구 신복로터리와 국도 24호선 주변의 만성적인 교통체증을 완화하기 위해서다. 국토부는 그해 5월 승인했다. 울산시는 같은해 9월 한국도로공사와 업무협약을 체결하며, 2017년 완공을 목표로 사업에 속도를 내는 듯했다.

◇하루 1000억원 손실 발생 공업용수관 이설
도로공사와 울산시는 개략적으로 개념도를 그려 사업비를 산출했다. 총 사업비는 230억원으로 책정됐다. 한국도로공사는 태조엔지니어링을 설계사로 선정해 실시설계에 착수했다. 범서하이패스IC는 4개의 램프가 만들어진다. 고속도로를 기준으로 2개는 천상리쪽, 나머지 2개는 구영리쪽이다. 그러나 설계과정에서 공업용수관(지장물) 이설이라는 심각한 문제에 봉착했다.
천상리쪽 2개 램프가 들어설 토지(길이 853.53m, 폭 7.6m) 아래에 복잡하게 얽힌 공업용수관, 상수도관 등 각종 관로가 매설돼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천상정수장에서 국가산업단지까지 연결된 직경 1500~2000㎜ 공업용수관 3개가 문제였다.
공업용수관을 옮기려면 단수조치를 해야 한다. 한국수자원공사(K-water)가 반발하고 나섰다. 국가산단에 물공급이 끊기면 하루 1000억원의 영업손실(K-water 추정)이 난다고 주장했다. 도로공사와 울산시가 시험굴착 등 세밀한 사전조사 없이 대략적으로 판단한 악재였다.
◇불확실성에도 공사발주에만 급급
K-water까지 가세하면서 3개 기관의 이해관계는 더욱 복잡해졌다. 업무협약 체결 이후 4년간 서로 입장차만 확인하던 중, 2019년 정치권이 도로공사를 압박한다. 도로공사는 서둘러 K-water, 울산시와 협약을 한다. 최대 쟁점이었던 단수 문제를 확실히 해소하지 못한 불안정한 협약이었다. K-water는 협약에서 “단수할 수 있다고 약속했다. 다만 경우에 따라 단수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조건을 달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에는 도로공사는 3개 관로를 단수시공 방식으로 설계를 준공처리 하고 공사를 서둘러 발주하는 데 이른다. 세영종합건설은 입찰에 뛰어들었고, 지난해 9월말 낙찰됐다. 그러나 K-water가 지난 1월30일 열린 제1회 유관기관 회의에서 2000㎜관은 단수가 불가능하다고 밝히면서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K-water는 회의에서 “용역결과 선암댐의 수위조절로 10일까지는 단수가 가능하지만, 현재 설계도를 적용하면 공사가 최소 3개월 이상 소요돼 물리적으로 단수를 하는 공법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냈다. 사업이 지연되면서 주민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범서 주민 박모(53)씨는 “울산시가 올해 주요 핵심사업으로 선정해 주민들은 범서하이패스IC가 순조롭게 진행되는 줄만 알았다. 조만간 고속도로 접근성이 좋아질 것으로 기대했는데, 실망이 크다”고 말했다.
최창환기자 cchoi@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