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물처럼 변해버린 임의 사랑
청산은 내 뜻이오 녹수는 님의 정이
녹수 흘러간들 청산이야 변할손가
녹수도 청산 못 잊어 우러 예어 가는고. <해동가요>

송도 기생이었던 황진이는 고려에 뿌리를 둔 고려사람이라는 자존감이 높았다. 청산을 그냥 산으로 보았느냐. 명월(明月)이 빈 산을 찍어내듯 비추어 대낮같이 밝은 산을 말하는 것이다.
녹수 흘러간들 제 자리를 꿋꿋이 사계절을 지키는 것이 여인의 절개라고 노래한다. 별곡(別曲)은 ‘이별노래’ 만은 아니다. 고려의 속요에서부터 조선의 민요를 통털어 말한다. 중국의 노래와는 다른 이 땅의 노래라는 의미도 있다.
하필 왜 여성이 푸른 산을 노래로 불렀을꺄. 별곡은, 예나 이제나 춤과 연주에 맞춰 부르는 노래인 것이다. 악기의 소리와 리듬을 살려 노래로 불린 것이 시조였으니 위 시조 역시 별곡이다.
비록 기생의 신분이었지만 만고에 푸른 청산을 빗대어 자신의 기개나 성정을 읊은 것이다. 이쯤은 돼야 더불어 노래할만하고 시조창으로 화답 시를 읊을 만 하지 않았을까.
지금도 풍월을 갖추지 않은 뱅그래 얼굴만으로 부른 권주가에 어디 술맛이 나겠느냐 그 말이다. 남자는 ‘정’을 주었다가도 물처럼 흘러가 버리지만, 청산이야 어디 변하는가. 이 시는 사랑 철학을 담았다. 청산 아래 흐르는 물처럼 흐르고 흘러가라. 물같은 사내여! 흘러서 가게나. 울긴 왜 울어외나. 님 답지 못하게 울면서 흘러가는 저 물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흐르는 물가에서 나눈 사랑의 애틋한 기억들이 하염없다. 문득 청산만 혼자 남아있음이, 흘러가는 물을 붙잡을 수 없음이 또한 서럽다.
하릴없이 그리워 다시 냇가에 나와 앉았다. 물속에 비친 산 그림자마저도 그냥 그 자리에 있다. ‘보내고 그리는 정’을 혼자 울지라도. 물 흐르는 이치 속에 사랑도 변한다는 이치를 깨닫는다. 이놈의 사랑을 어쩌란 말인가. 사랑에 취하나 술에 취하나 취하는게 인생이라면 울긴 또 왜 울어 사랑아!
한분옥 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