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11월, ‘미국우선주의(Make America Great Again)’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보호무역주의 강화는 예견된 수순이었다.
그러나 2025년 출범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정책은 그 규모, 속도, 그리고 불확실성 측면에서 시장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당초 중국에 사실상 무역 중단에 해당하는 145%의 관세를 매긴 것은 물론, 한국(25%)·일본(24%)·EU(20%) 등 우방국에도 고율의 관세를 부과해 세계경제에 충격을 안겼다.
국제 금융·외환시장이 요동치고, 미국 주가와 채권가격은 급락했다. 놀란 미국 정부는 중국을 제외한 국가들에 대해 90일간 상호관세를 유예하고 협상에 나섰다.
5월12일에는 대중 관세도 90일간 30%로 대폭 인하하고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특유의 예측 불가능한 행보가 협상의 불확실성을 키우며 여전히 글로벌 경제를 짓누르고 있다.

특히 울산의 주력 수출 품목인 자동차에는 4월3일부터 이미 25%의 관세가 부과돼 지역경제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은 우선적으로 각각 GDP의 6.3%와 4%에 달하는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를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관세정책의 이면에는 재정·무역 적자의 축소뿐 아니라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려는 지정학적 계산이 깔려있다는 시각이 많다.
미국은 20세기 초반 대영제국으로부터 세계 패권을 계승한 후 100년 가까이 자유무역의 수호자로서 세계질서를 주도해 왔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역설적이게도 중국은 미국 클린턴·부시 행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것을 계기로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뤘으며, 이를 바탕으로 군사·외교·기술 등 전방위에서 영향력을 키우며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를 흔들어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트럼프 1기-바이든-트럼프 2기 행정부로 이어진 대중국 견제는 단순한 무역 갈등을 넘어 미국의 리더십을 위협하는 중국과의 패권 다툼이며, 미국이 노골적인 보호무역주의로 선회했음을 상징한다.
한편, 미·중 간 패권 다툼과는 별개로, 트럼프 2기 행정부 이전부터 이미 세계 각국은 무역 상대국과 공급망(global supply chain)의 유효성을 재평가하기 시작했다.
팬데믹과 러·우 전쟁, 이·팔 전쟁 등 세계사적 사건들을 겪으며, 경제적 효율성뿐 아니라 국가안보와 충격에 대한 회복력 역시 중요하다는 점을 깨달은 것이다. IMF 수석부총재 지타 고피나스(Gita Gopinath)는 “표면적으로는 탈세계화의 뚜렷한 징후가 없지만, 이면에서는 분절화(fragmentation)의 징후가 늘고 있으며, 무역과 투자가 지정학적 선(geopolitical lines)을 따라 재편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따라서 미국이 촉발한 관세 전쟁은 일시적·국지적 현상이 아니라 장기적 경제질서 재편의 일부로 봐야 한다. 한마디로, 단기간에 끝날 일이 아니다.
관세폭탄의 충격은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특히 울산지역에서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 울산의 수출 의존도는 126.9%(2023년, 전국 1위), 대미 수출 비중은 26.6%(2024년, 전국 2위)로 대미수출 의존도가 매우 높다. 대미 자동차·부품 수출액(2024년)은 160.1억 달러로 울산 전체 수출의 18.2%에 달한다.
현재 주요 자동차 업체들은 25% 관세에 대응해 미국 내 재고를 활용해 영업활동을 이어가고 있지만, 협상이 장기화되면 수출을 강행해 높은 관세를 감수하거나 수출을 줄일 수밖에 없다. 어느 쪽이든 손실은 불가피하다.
예를 들어 대미 자동차 수출이 10% 감소할 경우, 울산의 생산과 부가가치는 각각 약 2.7조원과 0.5조원 감소하고 고용은 약 5000명 줄어들며, GRDP 성장률도 0.68%p 낮아질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자동차 이외 품목에 대한 영향, 미중 갈등에 따른 대중 수출 감소 등 간접영향, 그리고 경제적 불확실성이 내수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까지 고려하면 그 여파가 더욱 클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울산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단기적으로는 정부의 대미 협상에서 울산의 산업구조와 경쟁력을 반영해 실질적인 이익을 관철시켜야 한다.
특히 미국이 자국 조선업 재건에 적극적인 만큼 울산의 조선업 경쟁력을 전략적 지렛대로 삼아 전화위복을 꾀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무역 갈등의 장기화와 공급망 재편에 대비해 울산경제의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 울산경제는 2012년 이후 장기간 부진을 겪어 왔다. 다행히 팬데믹 이후에는 조선과 자동차 산업을 중심으로 비교적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으나, 울산경제 전체적인 관점에서는 아직 재도약을 모색하고 있는 정도다.
설상가상, 울산의 주력산업인 석유화학은 중국과 중동발 공급 과잉으로 위기에 처해 있고, 일부 업체들은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이다.
따라서 정체된 울산의 경제·산업 구조를 개편하기 위해, 우선 기존 주력 산업의 고도화를 추진하는 한편, 수소·이차전지와 같은 신산업 육성도 병행해야 한다. 석유화학처럼 구조적 위기에 처한 산업에 대해서는 ‘산업위기 선제대응 지역’ 지정, 추가적인 특별법(가칭 ‘석유화학산업 위기 극복을 위한 경쟁력 강화 지원 특별법’) 마련 등을 통해 국회·중앙정부·지자체·기업이 머리를 맞대고 과감한 지원에 나서야 한다.
더불어 서비스업을 육성해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다변화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한편, 도시 인프라를 개선해 청년층 유출을 막고 우수 인재를 유치해야 한다. 특히 2028년 예정된 ‘국제정원박람회’를 울산의 관광·정주환경 개선과 ‘울산’ 브랜드 가치 제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제조업 수도 울산의 강점을 AI 등 신기술과 결합해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하는 기민함도 절실하다.
위기 속 변화는 언제나 고통스럽지만, 그 고통이야말로 혁신의 출발점이다. 사람들이 충격과 불안에 휩싸였을 때, 그 절박함 속에서 혁신이 꽃피기 때문이다. 수많은 위기 속에서도 대한민국 산업의 기적을 일군 울산의 저력과 국회·정부·지자체·기업의 적극적인 대응이 결합된다면, 울산은 세계 경제질서 전환의 최전선에서 첨단 산업도시로 다시금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최정태 한국은행 울산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