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업수도’ 울산이 제조업 중심 도시의 DNA에 인공지능(AI)을 ‘혁신 엔진’으로 주입하며 산업 전환을 가속화하고 있다.
중소 제조업체의 문제 해결에 초점을 둔 AI 프로젝트를 추진, 울산만의 AI 혁신 솔루션 모델이 구축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인력·자본이 부족한 중소기업이 디지털 전환 시대에 뒤처지지 않도록 실질적인 지원이 이뤄지는 점은 울산이 글로벌 산업 AI 혁신 허브로 발돋움하는 데 중요한 동력이 될 것이라는 평가다.
9일 본보 취재를 종합하면, 중소기업에게 AI는 ‘그림의 떡’이자 ‘넘지 못할 산’으로 여겨진다. 인프라·인력·기술력 등에서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은 걸림돌이 많은 탓이다. AI 효과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고, 초기 투자 부담이 크다는 점에서 망설일 수밖에 없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NIA가 발표한 ‘2024년 기업정보화통계조사’에 따르면, AI 활용 제조기업 중 기본적 지침을 마련한 곳은 30.5%에 불과했으며 65%는 지침이 없었다. 중견·중소기업은 고성능 AI 솔루션보다 단순 필터링 수준의 저비용 룰베이스 기반 AI 솔루션을 선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지역 중소기업의 경우 대기업을 대상으로 만든 AI 시스템을 그대로 적용하다 실패를 겪는 사례가 많다.
울주군 소재 A스틸그레이팅 공장 대표는 “AI 공정을 도입해보려고 했지만, 이론 교육만 들어서는 시스템 문제점을 잡아낼 수가 없고 컨설팅 비용도 상당해서 포기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중소기업에 AI가 제대로 도입되려면 현장 밀착형 솔루션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현장 데이터를 활용한 맞춤형 프로젝트가 중소기업의 생산성 향상과 기술 혁신에 직접적인 해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UNIST는 지역 중소기업과 함께 수요·고장 예측, 불량률 감소 등 현장 데이터를 활용한 맞춤형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실습 중심 AI 교육 과정인 ‘AI 노바투스 아카데미아’ 프로그램을 통해 기업이 보유한 고장 이력 등을 직접 분석하며 문제 해결에 나서고 있다. 제조업 실무자인 교육생들은 데이터 전처리부터 알고리즘 적용, 모델 검증까지 AI가 접목되는 전 공정을 경험한다. 이 프로그램은 7기까지 92개 기업에서 213명의 AI 전문 인력을 배출했다.
그 결과 환경설비 중소기업인 태화환경은 AI 기반 질소산화물 예측 시스템으로 14억원 상당의 설비 투자 비용을 줄였다. 제조 중소기업인 네오넌트는 사출 공정의 불량률을 낮추고 세팅 시간을 대폭 단축해 연간 4억원 이상의 절감 효과를 거뒀다. 이 밖에 여러 중소기업이 눈에 띄는 성과를 냈다.
대기업도 예외는 아니다. HD현대미포는 선박 내 케이블 경로 최적화를 통해 비용을 9% 절감했고, BNK경남은행은 머신러닝을 활용해 대출 리스크를 줄이는 성과를 냈다.
이와 같은 AI 혁신 사례는 울산이 전통 제조업 도시에서 글로벌 산업 AI 혁신 허브의 선도 도시로 도약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제조업은 대량의 센서·기계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고 있어 AI와 결합 시 높은 파급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산업으로 지목된다.
특히 울산이 AI 기반 첨단 제조 혁신 허브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인근 지역과 적극 협력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된다. 새 정부가 동남투자은행 설립 등 동남권 성장 기반을 마련 중인 가운데 울산은 산업 제조, 부산은 해양, 경남은 우주·국방과 연계해 AI 융합 생태계 구축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지역 기업의 AI 기반 디지털 전환율은 기존 7.1%에서 오는 2030년에는 40%까지 대폭 확대될 것으로 관련 업계는 전망한다.
울산시 관계자는 “AI 실무 인재 양성, AI 산업 인프라 확충, 민·관·학·연 연계 기술 개발을 통해 도시·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울산이 글로벌 산업혁신 거점으로 설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밝혔다. 이다예기자 ties@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