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휴는 언제나 짧다. 짧았다. 이번 연휴도. 그래도 쉼이 된 시간이었을 것이다. 나에게도 몸과 마음이 회복되는 시간이었다. 6월이다. 다시 일상이다. 여유로움을 뒤로 하고 다시 시작이다. 우리는 긴장되는 일상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6월은 3월과 다르다.
아이들이 달라졌다. 체육대회가 있었다. 아이들은 교실에서와 다른 모습으로 운동장에서 만났다. 아이들의 시간은 서로의 시간으로 채워졌다. 5월은 ‘관계’를 이어준 시간이었다.
운동장에는 학급별로 단체복을 입고 얼굴에는 페인팅으로 흥겨운 아이들로 가득했다. 아이들의 모습은 다채로웠다. 조용히 단짝과 질서를 지키며 학급 행사에 참여하는 아이들, 학급 대표 선수로 자신의 재능을 공유하며 친구들의 응원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아이들, 수줍게 누군가와 마음을 어루만지고 나누는 아이들, 자신의 방식으로 협력하며 친구들을 깊이 배려하며 함께하는 아이들. 예뻤다. 어떤 모습도 좋았다. 모두에게 기쁨으로 가득한 시간이었다면.
초등학교 운동회가 생각난다. 청백전, 단체전, 개인전 출발 신호 총성에 너무 떨리고 긴장됐다. 엄마와 할머니, 동생과 언니랑 함께 운동장 귀퉁이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그런 우리의 추억에 아버지는 없었다. 당신은 항상 회사에서 다른 시간을 보내셨다. 함께하지 못하는 아쉬움에 투정을 부렸다. 그러나 이제야 우리와 함께하지 못했던 아버지의 마음이 짐작돼서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이제야 가족이 함께하지 못했던 친구들이 있었을 거라는 짐작에 또 마음이 아프다. 우리의 시간에는 설렘과 아쉬움, 아픔이 공존했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는 모든 경기에 예민했다. 심판을 하는 선생님들이 힘들었다. 벌겋게 얼굴이 그을렸다. 넘어져서 상처가 나기도 했다. 줄다리기를 하며 팔이 쓸리기도 했다. 응원상을 기대하며 열심히 응원하던 기억도 생생하다. 그늘 하나 없는 운동장에서 유행가를 함께 불렀다. 본부석 심사위원 선생님들을 의식하며 목청을 높였다. 응원은 경기력이 부족한 우리들이 체육대회를 즐기는 방법이었다. 친구들과 함께했던 나의 모습이 스친다.
체육을 잘하는 편이 아니었던 내게 체육대회는 불편하고 부담스러운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 ‘불편함’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과 생각을 나누고 서로의 행동을 맞추는 상호성을 배우기 위해. 그리고 ‘부담’ 또한 필요하다. 누군가와 함께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이해하고 연습하기 위해. ‘불편함’은 ‘관계’의 시작이다.
체육대회는 다채롭게 아이들이 만나게 했다. 모두에게 쉽게 스며드는 아이도 있었다. 은연히 전체의 부분이 되는 아이들도 있었다. 모두 우리 아이들이다. 불편해하면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협력하는 아이들이 기특하다. 아이들은 부담을 받아들이고 불편함을 이겨내며 함께 기뻐했다. 어느 순간 아이들은 하나가 됐다. ‘불편함’은 ‘관계’의 시작이 됐다.
이현국 삼산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