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주의 곁에 있으면서 군주의 틈을 엿보는 자를 역적이라고 한다” 한비자의 말이다. 사마천은 “배신은 가까운 데서 이루어진다”라고 했다. 실제로 역사는 이런 예를 무수히 보여준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
어리석은 군주는 자기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진 자이다. 이런 생각을 지닌 군주는 매사에 먼저 말하고 행동한다. 이렇게 하면 신하들은 군주의 속내를 추측할 수 있게 된다. 간사함이란 군주가 뜻을 드러내면 낼수록 강해지기 마련이다. 자만에 빠진 군주는 신하의 속내를 살피지 않는다. 군주가 자신의 속내는 드러내면서 신하들의 속내를 살피지 않는다면, 신하가 역적이 되기란 쉽다. 역적은 군주의 틈 속에서 자라기 때문이다.
힘은 드러났을 때보다 숨겨져 있을 때 더 두렵다. 그러므로 군주는 말과 행동을 앞세우지 않고도 엄격함이 신하에게 전해질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렇다고 군주가 그냥 가만히만 있으라는 것은 아니다. 군주 스스로 자기 관리를 잘해야 하고 신하들을 잘 살펴야 한다. 군주를 바라보는 눈은 수만 개이지만, 군주가 바라보는 눈은 두 개뿐이다.
그러니 군주는 주변을 철저히 돌아보아야 한다. 틈은 대체로 원칙을 지키지 않는 데서 비롯된다. 원칙은 인사에서 비롯되며 신상필벌을 분명히 하는 데서 빛난다. 인사는 감정이 아니고 이성이다. 나와 가깝고 멀고를 따지지 말고 그 자리에 적합한 인물을 등용하면 된다. 신상필벌은 상을 줘야 할 때 상을 주고 벌을 주어야 할 때 벌을 주면 된다. 군주가 신상필벌이 분명하면 신하는 맡은 본분에 더 충실할 뿐 다른 마음을 갖지는 않을 것이다. 군주에게 틈이 없으면 역적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역적은 크게는 자기 나라나 민족, 통치자를 배반한 사람이고, 작게는 군주의 눈과 귀를 멀게 하고 판단을 흐리게 하여 나라를 곤경에 빠뜨리고 국민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다. 본래부터 역적인 사람은 없다. 역적을 있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군주 자신이다. 어리석은 군주는 자기로부터 비롯된 틈으로 역적을 만들고 역적을 키운다. 그러고는 마침내 군주 자신을 어렵게 하고 나라를 망친다.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했다. 부디 틈을 만들어 역적을 만들지 않는, 그래서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송철호 한국지역문화연구원장·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