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한국 사회는 만 4세 아동을 대상으로 한 이른바 ‘4세 고시’라는 표현이 나올 만큼, 조기 입시와 사교육 경쟁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유치원 입학을 위해 자기소개서와 면접을 준비하고, 아이보다 부모가 더 긴장하며 학원가를 전전하는 풍경은 더이상 낯설지 않다. 이는 단순한 교육 현상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양육 문화, 계층 구조, 공교육 불신이 맞물린 복합적 결과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새로운 정부가 추진 중인 공교육 강화와 무상 숙식·돌봄 확대, 교사 인권 보장 등의 정책은 구조적 변화를 꾀할 중요한 계기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를 ‘정책적 선언’ 수준에 머물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문화적 대응 전략과 정책 집행의 정교한 설계가 병행되어야 한다.
새로운 정부가 추진하는 무상급식과 무상 돌봄, 초등 전일제 수업 확대 등은 학교를 단순한 학습 공간이 아닌 보편적 돌봄과 성장의 플랫폼으로 재구성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특히 유치원 및 초등학교 저학년 단계에서 국공립 비율을 확대하고, 안정적인 돌봄 시스템을 구축하면 부모의 사교육 의존도는 자연히 줄어들 수 있다. 또한 무상 교육과 돌봄의 실질적 실현은 교육비 불평등 문제를 완화하고, 사교육 수요의 주요 원인이 되는 ‘내 아이만 뒤처질 수 없다’는 불안감을 해소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공공기관 중심의 유아교육과정 질 제고가 병행되어야 하며, 교사 확보와 처우 개선, 보육교사의 전문성 강화가 핵심 과제가 될 것이다.
또한, 교사의 인권을 보장하고 교권을 강화하는 것도 이번 공교육 강화의 핵심 축이다. 이는 단지 교사 개인의 권리 회복 차원을 넘어, 교육의 질적 제고를 위한 전제조건이다. 교사가 신뢰받고 존중받는 환경에서만 아동 중심 교육이 가능하며, 창의적 교육 방식이 시도될 수 있다. 최근에는 교사를 관리인이나 서비스 제공자로 보는 시각이 강화되면서, 교육 본연의 전문성이 위협받고 있다. 정부는 교사에 대한 법적 보호 장치를 강화하고, 악성 민원에 대한 실질적 대응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동시에 교사의 자율성과 평가권을 존중하는 문화가 확산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정책적 개입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사회문화적 전환이다.
‘4세 고시’는 제도적 실패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더 본질적으로는 부모들의 불안과 계층적 욕망이 만들어낸 문화 현상이다. 이 문제에 대한 대응은 단순히 조기교육을 비판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며, 공적 시스템이 부모의 불안을 어떻게 대체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전략이 필요하다.
첫째, 정부는 ‘조기 사교육 실태조사’를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사교육 시장에 대한 관리와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영유아 대상 ‘프리미엄 유치원’ ‘면접 학원’ 등의 실태를 분석하고, 부당 마케팅이나 허위 정보 제공에 대한 법적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둘째, 국가 차원의 양육 문화 캠페인이 절실하다. 발달 단계에 맞는 놀이 중심 교육, 아동의 정서와 사회성 중심 발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공공 홍보가 필요하며, 언론과 방송, 플랫폼 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사회적 메시지를 일관되게 전달해야 한다. 셋째, 부모 대상 교육 및 심리상담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 부모는 아이 교육의 ‘소비자’가 아니라 ‘공동 교육자’이다. 공공기관이나 교육청 주도로 양육 스트레스를 줄이고, 아이의 발달 특성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부모 교육 프로그램이 필수적이다.
‘4세 고시’는 단지 유아교육의 위기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교육 불신과 경쟁 강박의 종합적 상징이다. 그러나 희망은 존재한다. 공교육의 질을 높이고, 부모의 불안을 줄이며, 놀이 중심 교육을 회복하고, 교사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우리는 충분히 ‘경쟁의 교육’에서 ‘성장의 교육’으로 이동할 수 있다.
지금이 바로 그 전환을 위한 골든타임이다. 교육은 다음 세대를 위한 가장 중요한 약속이며, 그 약속을 신뢰로 바꿔내는 것이 오늘날 우리 모두의 과제로 “너는 커서 무엇이 될래?”보다 “지금, 넌 행복하니?”라고 묻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정은혜 한국지역사회맞춤교육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