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주, 수도권과 강원 내륙을 시작으로 전국 곳곳에 퍼졌던 장맛비는 크고 작은 피해를 남겼다. 갑작스러운 집중호우로 도심은 순식간에 교통체계가 마비됐고, 도로는 물에 잠기며 차량이 고립되었다. 시민들은 출근길에 우산보다 먼저 스마트폰 알람을 확인해야 했고, ‘호우경보’ ‘지하차도 통제’ ‘도로 통행불가’ 재난문자는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다. 집중호우를 동반한 장맛비는 이제 단순한 기상이변이 아니라, 어느새 일상의 일부로 자리 잡고 있다.
차를 몰고 출근하던 시민이 물이 차오른 도로를 마주했을 때 당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누군가는 내비게이션을 켜고 우회로를 찾느라 분주했고, 또 누군가는 차 문을 열고 물살을 직접 확인하며 통과할 수 있을지를 가늠했다. 일부는 차량을 세워두고, 대중교통으로 갈아타기도 했다. 이처럼 장마철의 교통 혼란은 더 이상 일시적인 비상상황이 아니라, 도심 속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예고된 재난’으로 굳어지고 있다.
이제 장마는 단지 ‘비가 오는 계절’이 아니다. 오전까지 맑던 하늘이 오후엔 국지성 폭우로 돌변하고, 불과 한두 시간 만에 도로 기능이 마비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많은 시민이 장마철이면 내비게이션을 먼저 켜고 침수 이력을 떠올리며 우회경로를 찾는 것이 습관이 되었지만, ‘피해서 다니는 일상’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기후위기로 인한 극단적 강우 패턴이 반복되면서, 도시의 교통 인프라는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도로, 지하차도, 교량, 철도 등 대부분의 시설은 과거 평균 기후 조건을 기준으로 설계돼 있어, 현재의 이상기후에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도시 기능이 마비되는 이유는 기상이변 자체보다는 그것을 대비하지 못한 계획과 시스템의 부재에 있다고 생각한다.
서울 강남역 일대는 2022년 집중호우로 큰 침수 피해를 겪은 이후, 도로 저지대에 침수 감지센서를 설치하고 수위가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차량 진입을 자동 차단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강남구청은 빗물받이 관리 전담반을 확대하고, 취약지역에 상시 점검 인력을 배치했다. 이번 장맛비에서 큰 피해가 없었던 것은 도시의 ‘사전 대비’가 재난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하지만 이러한 대응은 여전히 일부 선도 도시의 사례에 불과하다. 장마철 재난 대응은 단순한 ‘치수 인프라 개선’에 그쳐서는 안된다. 도시계획, 교통, 안전, 환경 전반이 연계된 통합 전략이 필요하며, 지역별 지형과 구조를 반영한 대응체계와 시민 참여형 재난 대응 교육도 병행돼야 한다. 재난은 첨단기술만으로 막을 수 없다. 사람과 시스템이 함께 준비할 때, 비로소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교통 인프라 또한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도록 근본적으로 재설계되어야 한다. 도로와 교량의 배수 능력을 강화하고, 실시간 교통 통제와 연계된 재난 대응 체계를 구축하며, 침수 이력 기반의 위험지역 관리 고도화 등 기술적·제도적 전환이 함께 추진돼야 한다. 단기 보수나 응급 조치만으로는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하다. 반복되는 장마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피해 이후의 복구보다, 피해 발생을 사전에 막을 수 있는 예방에 더욱 과감히 투자해야 한다.
장마는 피할 수 없지만, 피해는 줄일 수 있다. 기후위기가 일상이 된 지금, 반복되는 침수 피해는 더 이상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도시가 충분히 준비하지 못한 데서 비롯한 ‘사회적 재난’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민이 침수 지역을 피해 우회하는 ‘일상의 대처’만으로는 한계에 도달했다. 도시가 먼저 위험을 예측하고,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선제적이고 통합적인 체계를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제는 위험을 피해 다니는 방식이 아닌, 위험을 견디고 관리할 수 있는 도시 시스템이 필요하다. 기후위기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회복력 있는 도시, 울산’이 되기를 기대한다.
조미정 울산연구원 연구위원·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