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사 근처, 늘 점심시간이면 으레 발길이 닿던 김치찌개 집이 어느 날 문을 닫았다. 주변에서는 나름 규모 대비 장사가 잘되는 식당이었지만, 사장님은 결국 인건비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폐업을 선택했다고 한다. 이는 김치찌개 집 사장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소상공인이 버티다 못해 가게 문을 닫고 있다.
울산의 자영업 폐업률은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을 지속하고 있다. 최근에는 전국의 모든 지역에서 폐업률이 상승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발표한 ‘2025년 폐업 소상공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4명이 창업 3년 이내에 문을 닫고, 평균 영업 기간은 고작 6년 반에 불과하다.
문제는 단순한 사업 실패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뒤에는 개인의 삶을 짓누르는 거대한 부채와 사회적 낙인이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특히 60세 이상 고령층 신용유의자가 전년 대비 47.8%나 급증했다는 사실은 더욱 비통한 현실이다. 특히 퇴직금을 털어 창업 자금으로 삼은 고령층은 재기조차 어려운 악순환에 빠진다. 왜 이렇게까지 됐을까.
우리나라 자영업 시장은 진입은 쉬우나, 생존은 극도로 어려운 기형적인 구조로 돼 있다. 고정비 상승, 내수 위축, 고금리, 고물가 등 거시 경제의 불안정한 흐름은 자영업자들에게 직격탄이 되고 있다. 여기에 최근 최저임금 인상과 배달·광고 플랫폼 수수료 인상까지 겹치면서 ‘장사해서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시대’가 현실이 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경기 침체 이상의 구조적 위기를 의미한다.
정부와 지자체는 폐업 위기에 놓인 자영업자들을 위해 재기 지원, 컨설팅, 재교육, 구직 연계 등을 제공하고 있으나, 현장의 체감도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단기적인 자금 지원이나 일시적인 유예 조치는 당장의 급한 불을 끄는 데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지속 가능한 경영 환경을 조성하는 데는 역부족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과잉 진입과 구조적 비효율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중장기적인 전략은 여전히 미흡한 것이 현실이다.
이제는 단순한 ‘지원’을 넘어, 자영업자들이 스스로 경쟁력을 키우고 생존 기반을 다지고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할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은 환경을 조성해야 할 시점이다.
먼저, 무분별한 창업을 막고 성공 가능성이 높은 사업 아이템과 입지를 선정하도록 돕는 체계적인 시장·상권 분석 기반의 컨설팅 지원이 필요하다. 또한, 창업 후에도 정기적인 경영 교육과 사업 단계별(창업, 운영, 폐업) 맞춤형 컨설팅을 제공해 자영업자들의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디지털 전환 지원을 통한 경쟁력 강화도 필요하다. 빠르게 변화하는 소비 환경 속에서 디지털 전환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온라인 플랫폼 활용법, 소셜 미디어 마케팅, 키오스크 및 스마트 오더 시스템 도입 등 디지털 기술과 AI(인공지능)를 활용해 매출 증대와 효율적인 경영을 돕는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는 단순히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을 넘어, 실질적인 디지털 교육 프로그램과 전문가 컨설팅을 연계해 자영업자들이 디지털 역량을 내재화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더불어, 폐업 후 재기를 돕는 사회적 안전망도 확대돼야 한다.
폐업 자영업자들을 위한 맞춤형 재취업 교육 및 구직 연계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금융권과의 협의를 통한 채무 조정 및 신용 회복 지원, 심리 상담 등 다면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나아가 향후에는 과밀업종의 무분별한 진입을 예방하고 창업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체계적인 창업 인큐베이팅 제공과 공정한 플랫폼 수수료 체계 확립, 임대료 상승 문제를 완화하기 위한 정책적 지원도 지속돼야 할 것이다.
지금은 자영업자의 눈물이 더 이상 흐르지 않도록, 정부와 지역사회가 함께 답을 찾아야 할 때다. ‘누가 이들을 구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답하지 않는다면, 내일은 더 많은 소상공인이 조용히 문을 닫고 우리 곁에서 사라질 것이다. 이는 단순한 경제 문제를 넘어, 사회 전체의 활력과 공동체의 안녕을 위한 필수적인 과제임을 명심해야 한다.
김용길 울산신용보증재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