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념의 충돌로 분단 되었다가 전쟁이 발발했다. 그 불길에서 처절하게 부서진 것은 개인 혹은 가족들의 삶이었다. 자신의 선택이나 의도와는 무관한 체험을 겪어야만 했다. 전선은 지도 위를 가로질렀지만, 그 선을 자르고 찢은 것은 인간의 시간, 공간, 기억이었다. 전쟁은 역사로 기록되지만, 묻혀버린 수많은 개인의 운명은 고통으로 남았다가 침묵으로 멀어진다. 전쟁은 집단의 이름으로 벌어졌지만, 관통하는 것은 늘 각자의 몫이다.
정치적 신념도 없고, 역사적 상황도 알지 못했던 농부의 아들들이 총을 들고 끌려 나갔다. 아이를 등에 업은 어머니는 불타는 철교를 건너야 했다. 이들에게 ‘운명’은 철학적 숙고의 대상이 아니었다. 단지 살아남기 위한 즉각적인 대응이었으며 선택조차 할 수 없는 불가피성이었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권력이 단지 억압하는 도구가 아니라, 개인의 사고와 행위를 구성하는 ‘규율의 기술’이라고 보았다. 전쟁은 극단을 보여준다. 권력은 총칼의 형태뿐 아니라 피난 속 소문, 마을의 감시, 생존을 위한 선택의 압박으로 작동했다. 어떤 이는 ‘도와달라’는 한 마디로 고발자가 되었고, 또 다른 이는 말하지 않는 이유로 ‘의심스러운 자’로 분류되었다. 푸코는 전쟁 후에도 권력은 사람들을 정상과 일탈, 충성과 반역으로 나누는 기준을 세운다. 이것은 인간을 더 이상 자유로운 주체가 아니라 권력이 만들어낸 분류체계에서 지워지는 존재로 전환 시킨다.
프랑스 철학자 장 자크 루소는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으나, 어디서나 쇠사슬에 묶여 있다”고 했다. 자유와 평등에 대한 염원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구절이다. 하지만 전쟁은 이 쇠사슬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국가’라는 이름 아래 동원하고 규율하며, 자유로운 선택을 박탈했다. 하지만 동시에 날마다 선택을 강요받았다. 피난할 것인가 남을 것인가, 숨을 것인가, 나설 것인가. 루소의 말처럼 인간은 태생적으로 개인의 자유로운 의지와 자율성을 갈망하지만, 그 자유는 외부로부터의 억압만이 아니라 생존의 두려움에서는 더욱 자취를 감춘다. 거대한 제도적 완력과 이후에 생긴 권력 시스템이 개인의 운명을 주인이 아닌 억압된 존재로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우해야 하며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할 존재라고 보았다. 모든 존재는 내재된 존엄성을 지닌다는 말이다. 하지만 전쟁은 이념의 이름으로 학살되고, 도구화됐으며, 후에는 살아남기 위해 존엄 대신 외면과 자기검열을 선택해야 했다. 총을 든 청년은 이념의 대리인이 되었고, 피난민은 배급표의 숫자로 치환됐으며, 가족을 숨긴 이는 국가 안보의 명분 아래 ‘반역자’로 호명됐다. 칸트의 윤리는 전쟁이 개인의 본질적 품위를 어떻게 무너뜨렸는지를 드러내는 기준점이 된다.
독일의 철학자 카를 마르크스는 삶이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라 사회구조와 계급관계에서 형성된다고 보았다. 한국전쟁은 이념의 이름으로 계급, 출신, 지역에 따라 운명을 가르는 구조적 폭압이었다. 인간을 역사라는 거대한 톱니바퀴 속에서 더 이상 주체가 아닌 객체로 만들어 버렸다. 또 “역사는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라고 했다. 누군가에겐 비극이고 누군가에겐 희극이 될 수 있다. 전쟁의 상처는 지금도 분단이라는 현실로 남아있다. 역사를 망각한 사회는 언젠가 다시 그 비극의 무대 위에 설 수도 있다. 전쟁은 끝났지만, 그것이 만든 경계선은 아직도 수많은 운명을 규정하고 있다.
이념은 규율의 명분으로 몸을 통제했고(푸코), 자유를 노래하던 인간은 사회의 사슬에 다시 묶였으며(루소), 존엄은 도구로 전락하고도 침묵을 강요당했으며(칸트), 운명은 스스로 쓰는 문장이 아니라 구조가 미리 정해놓은 각본이 되었다(마르크스). 전쟁은 총성이 멈춘 뒤에도 인간의 심연을 가로지르는, 철학 없는 폭력의 메아리이다. 운명이란, 주어진 삶을 묵묵히 감당하는 것만이 아니라, 삶을 어떻게 기억하고 나아갈 것인가에 따라 새롭게 구성되는 것이다. 전쟁을 겪은 이들은 선택하지 않았지만, 살아남아 기억을 지켜왔다. 오늘날 우리는 그 기억을 간직함으로써 비극을 반복하지 말아야 할 책임이 있다. 전쟁은 인간을 이념의 말뚝에 묶고 운명을 계획할 자유마저 앗아갔다. 그러나 고요함에서도 삶은 뿌리처럼 남아 진실을 밀어 올린다. 말없이 사라진 무명들 위로 환한 회복의 얼굴을 그려본다.
김진 김진명리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