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고 아름다운 하나의 법(One Big Beautiful Bill Act). 만일 누군가가 나에게 미국에서 이런 이름의 법이 제정될 거라고 말한다면 농담하지 말라고 면박을 주었을 것이다. 정당의 이름이 그 정당이 추구하는 공동체에서 지지받을 수 있는 최상의 가치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처럼, 법명은 그 법의 제정 목적을 가장 간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데, 저런 이름으로는 도저히 무엇을 위한 법인지 짐작할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정의하는 게 적절하지도, 가능해 보이지도 않는 ‘크다’와 ‘아름답다’라는 형용사가, 법률 용어는 말할 것도 없고 법명에 등장한 전례를 나는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나의 빈약한 상상력이 무색하게도, 이 법은 지난달 22일 미국 하원에서 찬성 215표, 반대 214표의 아슬아슬한 차이로 가결된 실제 법안의 이름이다. 대체 무엇이 크고, 무엇이 아름답다는 것일까. 2025 정부 회계연도의 예산 조정(budget reconciliation)을 주된 내용으로 삼고 있는 이 법안은 크게 △개인소득세율 인하를 포함한 감세 △불법체류자들의 메디케이드(저소득층 공공의료 프로그램)와 SNAP(저소득층 식비 지원 프로그램) 수혜 금지 △미국과 멕시코 간 국경에 설치될 장벽 건설, 국경 경비에 필요한 첨단 기술도입 및 이민세관단속국, 관세청, 국경수비대 등 국경 보안 인력 대폭 증원을 위한 재정 확보 △항공 인프라 현대화 계획 추진 △미성년자 대상 성전환 수술에 대한 의료 예산 지원 금지 △친환경 에너지 관련 예산 삭감 등을 주된 내용으로 한다.
이 가운데 감세 법안은, 지난달 경상시론을 통해 설명했던 것처럼, 2017년 트럼프 1기 시절 제정된 감세 및 일자리법(Tax Cuts and Jobs Act)을 연장하고, 거기에 더해 대선 공약으로 제시했던 비과세 항목 신설, 사회보장 연금 수령자들에 대한 세제 감면 등 추가적인 감세를 그 구체적인 내용으로 한다. 과거 우리나라의 경우에서처럼, 감세 정책은 필연적으로 정부 재정적자를 심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미국 의회예산국(CBO)은 이 법안이 시행될 경우 향후 10년간 2조4000억~3조8000억 달러의 연방정부 부채가 추가로 발생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는 지난달 미국의 정부 신용등급을 강등할 당시 무디스의 전망과 일치한다. 현재 미국 상원에서 심사 중인 이 법안에 대해, 여당인 공화당은 미국 독립 기념일인 7월4일까지 대통령 서명 공포를 완료하는 것을 목표로 속도를 내고 있다. 총 100명의 의석 중 53석으로 과반을 점하고 있는 상원의회 구조상 가결이 가능할 것처럼 보이기 쉬우나, 이 법안을 둘러싸고 트럼프 대통령과 일론 머스크 간에 벌어진 언쟁에서 보는 것처럼, 재정적자와 소득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저소득층의 사회안전망을 걷어내는 내용의 법안은 당장 공화당 내에서도 반발을 사고 있다. CBO 전망에 따르면 이 법안의 시행으로 인해 의료지원 혜택을 박탈당할 저소득 계층은 860만명에 이르고, 식비 지원을 받지 못할 이들의 숫자는 300만명에 달한다. 부정 수급을 차단하여 세금 낭비를 막고 합법적 거주자들의 복지 접근성을 보호한다는 법안의 취지는 현실 세계에서 의도한 대로 실현될 수 있을까.
무엇이 최적화된 정부 재정정책인가에 대해서 전문가의 식견을 갖고 있지는 않으나, 일반인의 상식으로 알고 있는 정부 재정정책이란 경제 안정, 경제 성장, 그리고 자원 배분 및 소득 재분배를 그 주된 목표로 삼아야 한다. 남의 나라 일이라고는 하나, 사회 특정 계층을 타깃으로 한 것이 명백해 보이는 이런 법안의 상원 가결과 대통령 공포가 미국에 어떤 경제 안정과 성장, 자원과 소득 재분배를 가져다준다는 것인지 나로서는 짐작이 가지 않는다.
반국가 세력 척결을 명분으로 선포된 비상 계엄령이 정작 파훼한 것이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지불하고 분담하던 신뢰 자본이었던 것처럼, 수십만의 시민들이 참여한 반트럼프 시위가 주요 도시에서 벌어진 미국에 이번 법안이 또 어떤 종류의 사회적 갈등과 불안을 일으킬 것이며, 그 부작용을 해소하는데 미국 시민들이 또 얼마나 많은 사회적 비용을 오랫동안 나누어 부담하게 될 것인지 우려된다. 관세 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미국이 망가뜨린 소프트 파워가 갖는 헤아릴 수 없는 가치를 생각하면, 이번 법안 시행에 치러질 대가 역시 결코 가볍지는 않을 것이다.
이준희 미국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