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 지난 6개월동안 민주주의를 위협했던 비상계엄 풍파가 지나가고 드디어 새 정부가 출발했다. 필자는 대한민국의 한 시민으로서, 전임정부가 출발할 때 성공하기를 바랐던 것처럼, 이제 막 출발하는 국민주권정부 역시 성공리에 끝나길 간절히 바란다.
새 정부는 어떻게 해야 성공할 것인가? 성공하려면 실패요인을 제거하는 것이다. 대개 새 대통령이 해야 할 큰 일로 첫째 제왕적 대통령에 집중된 권력의 분산, 둘째 정치와 이념 분열과 진영 대결 구조의 완화와 대통합 그리고 셋째 급변하는 국제사회의 파고를 뛰어넘을 고도의 전문성과 리더십을 꼽는다.
이 중에서 대통령과 대통령실 권력의 적절한 분산 필요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통령의 막강한 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하기 위해 기존에 만들어진 정부내 견제와 감찰 조직들의 기능회복이다. 소위 ‘사정(司正)기관’인 감사원, 공수처, 검찰청, 경찰청, 국가정보원, 금융감독원,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등의 제 역할 찾기이다. 이들은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해 대통령 개인에 충성하거나 상명하복이라는 미명 아래 자기본분을 망각하면 안된다. 대통령과 영부인 그리고 정부부처 고위직들의 비리와 부정부패에 눈감지 말고 제대로 감시해야 한다.
위 사정(司正)기관들은 권력자들의 오류와 부정부패로 국가가 몰락하는 것을 피하려는 국가의 안전장치이다. 국민의 많은 세금이 들어가고 고임금 공무원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제 역할을 못하고 임명권자에게 ‘감사’나 표하거나, 내란죄로 재판받는 파면된 자신들의 옛 수장을 감싸는 기관으로 전락한다면 존재할 이유가 없다.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지만, 이들이 잘못된 길을 걸으면 사정기관들이 간언하고 논쟁하고 중요한 비위발생시 자체 탄핵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편하고 나라가 산다. 대통령실도 주요 사정기관을 상명하복식으로 지배하려고 하면 뒤탈이 크게 난다. 새로 출범하는 국민주권 정부는 과거 정부의 과오를 반면교사 삼아, 제 할 일을 하지 않고 권력추구에 매몰된 사정기관을 개혁하되 그 자율성과 정상적 임무수행은 철저히 보장해야 한다.
현대 기업경영의 관점에서 보면 내부에 일종의 ‘레드팀’을 운영하고 끊임없이 자정노력을 해야 한다. 이러한 자기 감시와 감찰 기능은 조선시대에도 벌써 존재했다. 삼사(三司)라고 일컫던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의 역할이다. 이미 우리 선조들은 전제 왕권의 권력집중과 지배위험성을 간파하고 수 백년 전에 이미 내부 견제와 균형의 원칙을 반영한 통치구조를 만들어 내는 지혜를 보여주었다. 이성무의 <조선은 어떻게 부정부패를 막았을까>를 보면, 일찍이 조선시대에 레드팀을 활용한 내부통제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의 사헌부, 사간원 관리들은 현재의 감사원, 검찰청, 공수처 등의 공무원에 해당한다. 이들은 국왕에게 중요사안에 직언하고 간쟁하고, 고위관리들의 부정부패를 감찰하고 탄핵함으로써 나라가 국법에 따라 제대로 운영될 수 있도록 치열한 삶을 살았다. 왕도 함부로 결정할 수 없었다. 자신들의 조직 수장이 심대한 잘못을 한 경우 그를 직접 탄핵하기도 했다. 우리 감사원과 검찰에서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면 우리가 지난 6개월동안 겪었던 국가존망사태는 겪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세종때 6진 개척으로 유명한 김종서 장군은 사헌부 감찰업무를 맡았을 때, 세종의 형님 양녕대군이 궁성출입금지 법을 지키지 않았다고 예외없이 탄핵했다. 당시 김종서는 천민 전락 위기를 맞기도 했다. 또한 폭군 연산군에 이어 왕이 된 중종 시대에 개혁파 조광조는 온정주의에 빠진 사헌부와 사간원 관리 전체를 교체해달라는 직언을 상소해 그 뜻이 실현되기도 했다. 최고권력자에게도 추상같았던 이들 덕분에 조선왕조 오백년이 유지될 수 있었다. 새 정부에서 사정기관 본연의 업무에 충실한 공직자들이 많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한규만 울산대 명예교수 영어영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