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칼럼]AI 시대, 울산이 그려야 할 창의적인 지역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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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칼럼]AI 시대, 울산이 그려야 할 창의적인 지역 공간
  • 경상일보
  • 승인 2025.06.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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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범관 울산대학교 스마트도시융합대학 교수

요즘 울산이 떠들썩하다. 6월, 동북아 최대 규모의 인공지능(AI) 전용 데이터센터가 미포국가산업단지에 들어선다. 약 7조원이 투입되는 이 사업은 단순한 인프라 구축이 아니라, 울산이 제조 기반의 산업도시에서 AI 기반의 스마트 산업도시로 전환되는 중대한 분기점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데이터센터는 방대한 정보를 생성·집적하며, 울산을 ‘데이터 중심 도시’로 변화시킬 잠재력을 지닌다. 그러나 기술적 외형만으로는 진정한 변화를 담보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이 데이터를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맥락으로 도시의 삶과 연결해 낼 것인가에 있다. 기술은 이제 산업 구조만이 아니라 도시의 정체성과 창작 방식, 궁극적으로는 공간의 의미까지 빠르게 바꾸고 있다.

최근 자주 듣는 질문 중 하나는 “AI가 만든 디자인이나 건축, 어떻게 보십니까?”이다. 몇 초 만에 수십 개의 결과물을 내놓는 AI는 분명 놀랍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창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디자인 이론가 도널드 노먼은 “창의성은 불편함에서 나온다”고 했고, 미술사가 에른스트 곰브리치는 “새로움은 전통과의 관계 속에서만 의미 있다”고 말했다. 결국 진정한 창작은 기술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사람의 문제의식과 경험적 감각에서 비롯된다.

AI는 멋진 이미지를 빠르게 만들어낼 수 있지만, 공간이 품은 분위기와 감정의 결까지는 담아내지 못한다. 창작은 기억과 경험, 감각이 어우러진 총체적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오히려 인간의 감각과 해석, 그리고 지역적 정체성을 바탕으로 한 ‘진짜 전문가’가 더 절실한 시대다. 기술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지만, 그것을 지역적 삶과 연결해 의미 있게 재구성하는 일은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다시 주목해야 할 키워드는 ‘지역성’이다. 지역성은 단순한 향토성이나 지리적 특성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말투와 거리의 온도, 오래된 시장의 풍경, 바닷바람의 냄새처럼 오직 그 지역에서만 체화되는 감각의 총합이며, 창의의 출발점이다. AI는 그것을 흉내낼 수 없다. 그래서 지역성은 기술이 아닌 감각의 고유한 힘이며, 창조의 살아있는 데이터다.

기술이 빠르게 도시를 재편하고 있는 지금, 지역 고유의 공간과 함께 기억과 이야기도 사라져가고 있다. 울산 역시 한때 북적이던 사택 놀이터, 울산역 광장, 태화강변의 목재 창고들이 점차 사라졌다. 이 공간들은 단지 장소가 아니라 울산 시민의 삶과 정체성을 담았던 생활의 기반이었다. 기억 없는 공간은 도시를 획일화시키고, 맥락 없는 건축은 창작이 아닌 반복된 모방일 뿐이다.

이번 데이터센터는 울산의 기술적 위상을 높일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성과는 이 거대한 시설이 어떻게 울산의 지역성과 연결되느냐에 달려 있다. 단지 AI 연산을 위한 산업 설비가 아니라, 첨단 기술과 문화, 사람의 삶이 함께 녹아드는 공간으로 재해석돼야 한다. 시민 누구나 참여하고 공유할 수 있는 열린 문화 공간, 창의와 산업이 융합하는 울산만의 상징적 랜드마크가 돼야 한다.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기술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세계를 드러내는 방식”이라 했다. 같은 맥락에서, 기술과 공간은 단순한 기능이 아닌, 사람과 삶의 정체성을 담아내는 매개다. 공간은 사람의 감각과 기억을 깊이 담을 수 있는 창작의 토대이며, 도시의 개성을 결정짓는 문화적 매질이다.

그 힘이 제대로 발휘될 때, 울산은 AI 기술을 넘어 창의와 산업, 삶이 어우러진 세계적 융합도시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창작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이 살아낸 지역의 경험과 기억에서 나온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창의적 연결고리. 그것이 바로 지금 울산이 그려야 할 ‘지역 기반의 창의적 공간’이며, AI 시대의 도시가 가야 할 방향이다.

김범관 울산대학교 스마트도시융합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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