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로 와서
바다를 피해 걷는다
살구가 떨어진다
여름의 구름은 멈춰 있고
열무 옆에서 발가락을 씻는다
지붕은 푸른색
마음은 해로워라
연달아 일어나려는 조급한 배열을
참방거리며
여름은 살구를 손에 쥐여준다
길고 무더운 여름이 계속되겠지만
장판 위에 누우면
살구와 바다와 마음이 나란한 동해
노인들은
낮부터 방에 드러누운 젊음을
안타까워하고
미풍 같은 시를 읽고 싶다
고뇌, 열망, 후회…
알 게 뭡니까
무거운 인생 잠시 제쳐두고 만끽하는 평화

지독히 더운 날들이 계속되다 보니 모든 걸 놓아버리고 산속에 들고 싶다. 계곡물에 발 담그고 물멍을 하고 싶다. 물과 나무와 하늘의 푸름에 젖고 싶다. 누가 뭐라고 한다면 알 게 뭡니까, 심드렁하게 한마디.
화자는 산 대신 바다를 택했다. 피서지론 바다가 제격이다. 하지만 바다에 와서 바다를 피해 걷는다니, 저 바다의 푸름과 넓음에 압도돼 오히려 피하고 싶은 걸까. 간절히 바라던 걸 마주하고 딴청을 피우는 걸까. 그러거나 말거나 살구의 계절인 여름은 살구처럼 익어간다.
이제 안빈낙도나 물아일체를 논하기 어려운 시절, 그저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민박집 장판 위에서 뒹굴며 자연을 느껴본다. 가끔 떠나온 곳의 소식에 조급해지기도 하고 노인들은 저 무력해 보이는 청춘, 낭비하는 젊음을 안타까워하지만, 사는 게 별건가, 모처럼 찾은 평온한 시간을 온전히 즐기는 것, 고뇌와 열망, 후회 같은 무거운 감정은 영화관람 전의 휴대폰처럼 잠시 안녕, 미풍같이 가볍고 단순한 평화를 원하노니 삶의 무거운 짐은, 알 게 뭡니까.
송은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