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 경영을 비롯해 행정, 교육, 국방, 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많은 부분에 디지털 기술이 스며들면서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디지털 전환이란 인공지능(AI), 클라우드,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등 최신 지능정보 기술을 활용해 기업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이고 경쟁력을 강화하는 과정을 말한다. 이는 단순한 자동화나 전산화 수준을 넘어, 산업의 구조와 운영 방식 자체를 혁신하는 흐름이다. 유통업계는 매장 데이터를 분석해 소비자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병원은 AI 기반 진단으로 정확도를 높이며, 건설현장에서는 드론과 3D 모델링으로 설계부터 시공까지 최적화하는 등의 방식이다.
기존 제조공정이 사람의 판단과 경험에 의존했다면, 이제는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한 자동화·자율화 체계로 전환되고 있다. 품질·비용·납기 측면에서도 디지털 전환은 확실한 우위를 가져다준다. 디지털 전환이 더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과 성장을 위한 필수 조건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변화는 오히려 제조업과 중공업처럼 전통적인 산업일수록 더 절실하다. 스마트공장, 디지털트윈, 수요예측 시스템 등은 이미 선진국 산업 현장에서는 보편화되고 있다. 이를 통해 불량률을 줄이고, 설비 유지 비용을 낮추며, 공정의 유연성을 키운다. 산업 전반의 고부가가치화는 물론, 글로벌 변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울산의 현실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 등 울산의 주력 산업은 오랜 시간 국가 산업화를 이끌어온 핵심 축이었지만 지금은 그 선두 자리가 흔들리고 있다. 여전히 많은 생산 현장이 아날로그 방식에 머물러 있고, 중소 협력업체나 자영업, 서비스 업종까지 포함해 전 분야에서 디지털 기술의 도입은 더디다. 디지털 전환이 본격화되는 시대에 울산 산업은 아직 출발선에 서 있는 격이다.
자동차 생산 공정의 상당 부분은 여전히 수작업에 의존하고, 조선소에서는 데이터보다 숙련자의 ‘감’이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 기술은 진화하지만, 산업의 작동 방식은 여전히 관성에 머물러 있다. 디지털 전환을 위한 인프라와 전문 인력, 실행 체계가 부족한 것도 지역의 기업들이 공통으로 겪는 현실적 고민이다.
울산의 산업이 대기업 중심의 중공업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다. 자동차 한 대가 만들어지기까지 수많은 1차·2차 부품업체가 필요하고, 조선소 하나가 움직이려면 자재 공급, 물류, 정비, 급식, 안전 등 다양한 연관 산업과 서비스업이 함께 돌아간다. 이들이 디지털 역량을 갖추지 못하면 결국 공급망 전체의 비효율로 이어지고, 이는 원청 기업의 경쟁력 약화로 직결된다. 이에 더해 울산 경제의 또 다른 얼굴, 즉 중소기업과 상공업, 1인 기업, 자영업자, 서비스 업종도 디지털 전환의 사각지대에 있는 현실을 생각한다면 도시 전체 산업 생태계의 균형 성장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그래서 이제는 특정 산업이나 일부 기업만의 디지털화가 아닌, 산업 전반의 체계적이고 포괄적인 전환이 꼭 필요하게 됐다. 울산의 산업구조 전체를 고도화하고, 더 넓은 기회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체질을 바꾸는 ‘도시 산업의 재설계’를 위한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이 지금부터라도 시작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울산의 상황을 바탕으로 필자는 최근 ‘울산시 산업 디지털 전환 촉진 조례’를 발의했다. 이 조례는 울산의 산업 전반을 디지털 중심 구조로 바꾸기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자 하는 첫걸음이다. 여기에는 실태조사, 기본계획 수립, 선도사업 발굴, 중소기업 지원, 전문인력 양성, 정보교류, 협력체계 구축 등 산업의 디지털 전환과정에서 필요하면서 실행가능한 조항들이 담겨 있다. 무엇보다 기존의 대기업 위주 산업정책을 넘어서, 소규모 사업자와 서비스 산업까지 포괄하는 지역의 디지털 생태계 조성을 핵심 목표로 삼고 있다는 게 특징이다.
이 조례가 울산의 산업구조를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하는 실질적인 촉진제로 작용하길 기대한다. 이를 계기로 산업 주체와 시민, 행정이 함께 협력하고 지역 전체가 디지털 전환이라는 방향 아래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 울산은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도시로 다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방인섭 울산시의회 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