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당에 가면 ‘물은 셀프’라는 문구를 흔히 접하게 된다. 물을 영어로 하면 셀프라는 농담은 하도 많이 들어 이제는 거의 속담 수준이 되었다. 주위를 한 번 둘러보면 정말 ‘셀프’나 ‘SELF’는 어디서나 발견할 수 있는 단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될 것이다. 주유소는 이제 셀프주유소가 기본이 되었다. 간혹 셀프주유소가 아닌 곳에 진입했다가 다시 빠져나오는 무례함은 결코 인색한 사람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집에 있는 PC에서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셀프’를 기입하니 셀프세차장, 셀프빨래방, 셀프사진관, 셀프포트레이트, 셀프스튜디오, 셀프염색, 셀프정비소 순으로 검색어가 추천된다. 개인의 성향에 따라 정해진 것인지 모르지만 정말 이렇게 다양한 셀프가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원시시대는 자급자족의 시대 즉 셀프의 시대였을 것이다. 그러다가 전문성을 갖추어 대행하는 사람들이 나타나 그들에게 대가를 주고 맡기는 시대가 됐고 산업화 이후에는 무수히 많은 대행의 시대가 되었을 것이다. 최근 들어 셀프의 시대로 회귀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셀프XX’가 많아졌다. SNS의 유행과 AI 기술의 발전으로 셀프화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사진 촬영은 셀카가 대세가 되었다. 그 사진들은 SNS를 통해서 자신을 표현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사용된다. 예전에는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삼각대를 이용하지 않는 이상 카메라를 가지고 남에게 부탁을 해야만 했다. 물론 지금도 스마트폰을 맡겨서 단체 사진을 부탁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웬만한 소수의 몇 명이라면 그냥 셀카로 찍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스마트폰을 든 사람이 제일 잘 나오는 문제가 있기는 하다.
마트에서 상품을 골라 담은 카트를 끌고 나오면서 사람들은 눈치게임에 나서게 되는데, 일반계산대 여러 곳 중에서 가장 줄이 짧은 곳을 고르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다가 셀프계산대로 눈길을 돌리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귀찮음을 감수하여 시간을 벌게 되는 셈이다. 셀프계산대 사용이 익숙해져서 아예 처음부터 셀프계산대로 향하는 경우도 많다.
아예 처음부터 끝까지 전적으로 셀프인 곳으로 무인상점, 무인카페가 있다. 시스템이 모두 갖추어져 일정하고 다양한 서비스를 스스로 제공받을 수 있게 된 기술의 산물이다. 전적인 셀프구매를 하되 기술이 접목되지 않은 또 다른 의미의 무인상점으로 소위 ‘양심가게’가 있다. 시골 여행 중에 발견하는 농산물 무인가게에서 물건을 사고 돈통에 해당 금액을 넣는 순간 양심을 덤으로 얻게 되는 기분이 든다.
이처럼 셀프는 비용을 아끼게 하고, 때로는 자신을 표현함에 주도권을 주고, 양심을 얻는 등 많은 장점을 발휘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반대 측면도 분명히 있다.
수년 전 뉴스에서 “이마트 셀프계산대 도입으로 계산원 1100명 감축”이라는 제목이 눈에 띈다. 물론 계산원의 생계를 위해 소비자가 일반계산대만을 이용해야 할 이유는 없지만, 셀프화로 인해 각종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은 인지해야 한다.
특허나 상표 출원에서도 셀프출원이라는 말이 쓰인다. 통상 발명이나 상표안을 고객이 제시하면 변리사는 법적 검토 후 법령에 정해진 바에 따라 서류 작성하여 특허청에 제출하는 출원(신청)절차를 대행하게 되는데, 비용을 아끼기 위해 유튜브 등을 통해 학습하여 고객이 직접 진행하는 셀프출원도 많이 행해진다. 이 경우 출원의 결과나 권리보호 측면에서 해피엔딩이 나오기 어렵다. 소송에서는 간혹 나홀로 소송 즉 셀프소송을 하여 승소했다는 것이 뉴스로 나오기도 한다. 그만큼 결과가 좋은 경우가 드물어 뉴스감이라는 이야기이다. 의사를 믿지 않고 민간처방에 의존하다가 병을 키우거나, 전자제품을 혼자 고쳐보다가 낭패를 당하거나 하는 경험은 한 번씩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셀프가 적절한 것이면서 당연한 것이 있고 때로는 셀프가 패착인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비교적 쉽고 품질의 차이가 크지 않은 것은 셀프로, 전문적이거나 품질의 차이가 큰 것은 시간, 비용, 효율을 따져서 대행을 이용하는 등 선택의 지혜는 필요하다.
김지환 지킴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