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본보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28일 울산 한 병원 주차장에서 발생한 교제폭력·스토킹 살인미수 사건은 피해자가 현행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얼마나 무방비하게 방치됐는지를 보여준다.
피해 여성은 가해 남성 A씨로부터 수백통에 이르는 전화와 문자를 받았으면서도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뜻을 밝혔다. 피해 여성은 스토킹의 공포에 시달렸으면서도 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을까.
전문가들은 특정 관계가 맺어진 사이에서 발생한 사건 피해자 대부분은 가해자를 112에 신고하면서도 처벌까지 가는 것은 망설이는 일이 많다고 설명했다.
유리안 법무법인 소울 변호사는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좋았다가 나빠지기도 하고, 감정이 해소되면 또 관계가 회복되기도 한다”며 “피해자들이 2차 가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신고 이후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것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 피해자 입장에서 수사기관의 조사 환경이 편의적으로 조성돼 있다고 느끼기 어려울 수 있고, 가해자 처벌을 위한 제도와 절차가 복잡한 이유도 한몫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피해자와 가해자의 ‘친밀한 관계’ 때문에 정작 중요한 점을 놓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처벌 불원 의견이 수사기관이나 법원에서 사건을 축소하거나 종결 근거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이다. 스토킹과 달리 교제폭력의 경우 특별법이 없어 형법상 반의사불벌죄가 적용돼 더 문제로 인식된다.
전문가들은 교제폭력 등은 오히려 ‘아는 사이’이기 때문에 재범 가능성이 높고, 피해는 장기간 지속될 수 있다고 본다.
관계성 범죄의 경우 범행 그 자체의 중대성을 보고 처벌과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접근금지 명령을 내린다거나 피해자에게 스마트워치를 지급하는 기존 조치는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일상을 제한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배미란 울산대학교 교수는 “가해자 상담 프로그램 의무화, 보호관찰 유사 밀착관리, 심리상담 연계 등 심리적 제재와 일상 통제를 병행하는 ‘중간 단계 조치’가 필요하다”며 “보호관찰소와는 별개로, 비형사적 감시 체계 도입을 지역 사회 차원에서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최근 교제폭력 특별법 제정 논의가 이뤄지고 있지만, 개별 입법 방식으로는 오히려 사각지대가 더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의 시선도 있다. 관계성에 기반한 범죄는 하나의 틀로 묶어 처벌 원칙을 분명히 하고, 예방·보호 조치를 통합하는 법체계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커지는 이유다.
한편 30일 울산지방법원은 A씨에 대해 도주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A씨는 이날 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출석하면서도 살해 의도나 범행 동기를 묻는 취재진에게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이다예기자 ties@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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