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둘러 빨래를 하고는 잰걸음으로 그녀는 동굴로 돌아왔다. 나뭇가지를 꺾어서 위장을 하고는 동굴 앞에 빨래를 널었다. 훈제된 늑대고기로만 연명할 수 없다고 생각한 그녀는 동굴 주위를 샅샅이 살펴보았다. 다행스럽게도 칡뿌리, 더덕, 산도라지, 산마늘, 맥문동, 각종 버섯, 산마, 야생부추 등 다양한 먹을거리가 동굴이 있는 무룡산에 서식하고 있었다. 게다가 올가미를 잘 이용하면 사시사철 꿩이나 노루, 토끼 등의 야생동물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틀 동안 정신없이 야생식물을 채취했더니 그사이에 빨래가 말라있었다. 이불 한 채를 뜯어서 나머지 이불에 덧대고 바느질을 했더니 이불은 그런대로 멀끔해졌다. 의복도 한 벌을 희생하여 나머지를 살리는 방식으로 꿰매어서 비록 누더기지만 바람은 막을 수 있게 해 놓았다. 그런 연후에 동굴 안의 이곳저곳을 손보아서 제법 사람이 거주하는 집처럼 해 놓았다. 국화는 천동이 좋아할 것을 생각하며 소리 없이 웃었다. 면경에 비춰진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니 정말 자신이 웃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활짝 웃어본 것이 몇 년 만인지 모른다. 그러고 보니 남편이 죽고 나서는 한 번도 마음껏 웃어본 기억이 없었다. 며칠을 정신없이 일해서인지 그녀는 금방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 날부터 그녀는 본격적으로 먹을 것을 구하러 무룡산 중턱까지 내려갔다.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펴보니 오늘도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다 싶어서 열심히 더덕을 캐는데 그녀의 앞을 턱 하니 가로막는 그림자가 있었다. 사람이었다. 그녀는 너무 놀라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뭘 그리 놀라서 오줌까지 지리고 지랄이야? 설마 내가 잡아먹기라도 할까 봐 그래?”
“…….”
“혹시 벙어리?”
“저한테 왜 이러는 거예요?”
“이년 봐라. 벙어리는 아니네. 아, 난리 중에 마누라는 죽고 너무 적적해서 죽는 줄 알았는데 무룡산 신령님이 너를 보내준 거네. 이 깊은 산중에서 혼자서 뭐하고 있었을까?”
“조선은 유학의 나라입니다. 아무리 전란 중이라고 해도 아녀자를 함부로 하는 건 옳지 못한 일입니다. 나리는 가던 길을 가세요.”
국화는 죽을힘을 다해서 사내에게 또박또박 말했다.
“유학의 나라? 임금이 백성을 버리고 도망가는 나라에서 유학은 무슨 얼어 죽을 유학. 양식이 없어서 사람이 서로 잡아먹는 세상에서 그놈의 공맹이 다 뭐하는 개뼈다귀야. 내가 널 잡아먹지 않는 것만 해도 감사해야 돼. 이년아.”
사내는 말을 하면서 그녀의 해질 대로 해진 윗저고리를 홱 낚아챘다. 낡은 옷은 쉽게 뜯어져 나가고 그녀의 젖가슴이 햇빛에 노출됐다.
“그년 속살 한번 죽이네.”
사내가 입맛을 다시면서 다가서자 국화는 체념을 하고 눈을 감았다. 치욕을 감내하려고 그녀가 이를 악물고 있는데, 사내가 더 이상 다가오는 기색이 없었다. 그때 또 다른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글 : 지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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