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찔레는 고려 때 원나라에 끌려갔다가 십수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 소녀다. 찔레는 그리운 가족을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헤매다 그만 죽고 말았다. 그의 넋은 꽃이 되고, 가족을 애타게 부르던 목소리는 향기로 남았다.
‘하얀 꽃 찔레꽃/ 순박한 꽃 찔레꽃/ 별처럼 슬픈 찔레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 놓아 울었지.
장사익이 1993년 발표한 노래 ‘찔레꽃’은 당시 전 국민들을 울렸다. 찔레꽃 향기는 동네 전체를 휘감아돌았고, 덤불을 뒤덮은 꽃은 밤하늘 별처럼 빛났다.
찔레꽃은 봄날을 떠나보내고 여름을 맞는 계절의 이정표다. 찔레꽃이 피면 봄날은 간다. 필자는 어릴 적 찔레의 부드러운 어린순을 많이 먹었다. 학교 갔다 돌아올 때 쯤이면 길가 찔레 덤불에서 통통한 순을 꺾어 껍질을 벗기고 사각사각 씹어 먹었다. 그러면 어린순에서는 떫은 듯 달짝지근한 즙이 배어나왔다. 오리(五里)나 되는 먼 길에서 우리는 찔레꽃을 원 없이 보았다.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 언덕위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자주고름 입에 물고 눈물젖어/ 이별가를 불러주던 못잊을 동무야.
가수 백난아의 ‘찔레꽃’(1941)은 가요무대에 가장 자주 불려졌던 곡이다. 그런데 이 노래의 가사를 보면 찔레꽃이 붉다고 표현돼 있다. 혹자들은 찔레꽃이 바로 해당화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찔레꽃을 보며 노래를 부르면 그 뿐. 찔레꽃은 여전히 찔레꽃이다.
찔레꽃은 학명이 ‘Rosa multiflora’로, 장미과 꽃이다. 영어명은 야생장미를 뜻하는 ‘wild rose’다. 찔레라는 말의 어원이 어디서 나왔지 모르지만 찔레 덤불에 맨몸으로 들어가면 만신창이가 되는 것은 확실하다. 지금 담장이나 울타리에 한창 피어나는 장미는 찔레꽃을 모아 18세기 말에 개량한 꽃이다.
찔레꽃이 진 자리에는 붉은 열매가 열리는데, 새들이 가장 좋아하는 먹이다. 열매의 비타민C 성분은 감잎의 두 배나 된다고 알려져 있다. 한방에서는 ‘영실’이라 부르며 이뇨와 부종, 변비, 관절염에 좋다고 한다. 이재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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