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껏 싸준 도시락을 남편은 가끔씩 산에다 놓아준다
산새들이 와서 먹고 너구리가 와서 먹는다는 도시락
애써 싸준 것을 아깝게 왜 버리나
핀잔을 주다가
내가 차려준 밥상을 손톱만한 위장 속에 그득 담고
하늘을 나는 새들을 생각한다
내가 몇 시간이고 불리고 익혀서 해준 밥이
날갯죽지 근육이 되고
새끼들 적실 너구리 젖이 된다는 생각이 밀물처럼 번지는 이 밤
은하수 물결이 잔잔히 고이는
어둠 아래 둥그런
등 맞대고
나누는 한솥밥이 달디 달다
나의 자비심이 누군가의 선행으로

어렸을 때 새참을 이고 들에 나가면 아버지는 꼭 ‘고수레’하고 밥이나 반찬을 뿌린 다음 새참을 들었다. 그래야 곡식이 잘되어 풍년이 든다고 했다.
고수레는 야외에서 음식을 먹을 때 농경신인 자청비에게 먼저 공양하는 풍습이다.
배를 띄울 때는 해신에게도 고수레한다. 아마 고수레하고 뿌려진 음식은 새나 물고기나 다른 짐승들의 먹이가 되었을 것이다.
화자의 남편도 도시락을 놓아주어 산새나 너구리의 먹이가 되게 한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고수레가 생각나는 행동이다.
물론 지금은 농약 때문에 과일 껍질도 못 버리게 하고, 멧돼지가 온다고 성묘 때의 고수레도 금하는 편이지만, 뭇 짐승들과 음식을 나누는 마음 씀이 그것을 헤아리지 못하겠는가.
이것은 정성껏 마련한 도시락이다. 대개 사람 입에 맛있으면 짐승들 입에도 맛있는 법.
음식을 나누는 사이를 ‘식구’라고 한다. 도시락을 통해 한솥밥을 먹었으니 산새나 너구리도 한 식구인 셈. 그런 마음이 야생의 동물까지 끌어안는 자비심이다.
도시락 고수레는 아마 산신의 마음을 움직여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안전을 지켜줄지도 모르는 일.
그렇다면 오늘 나의 무사함은 얼굴 모르는 누군가의 선행에 기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송은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