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확산이 가속되면서 2030년 글로벌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가 한국의 연간 전력 소비량의 두 배를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이처럼 전 세계가 전력 부담에 직면한 가운데,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울산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AI 데이터센터 유치가 본격화되고 있으나, 정작 이를 떠받칠 전력 인프라는 턱없이 뒤처져 있다.
지난 22일 국회에서 열린 ‘AX 시대 급증하는 전력수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세미나에서도 이 문제가 집중 제기됐다. SK는 울산에서 AWS와 함께 대규모 AI 데이터센터를 추진 중임에도 인근 발전소에서 직접 전력을 공급받는 것조차 원활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현 제도상 모든 전력은 한국전력 계통망을 거쳐야 하고, 송전망 구축에만 5~7년이 걸린다. 반면 데이터센터 건립은 민간 주도로 2~3년이면 완공된다. 속도 차를 해소하지 못하면 완공된 시설이 전력 부족으로 가동조차 못하는 기형적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따라서 ‘직접 전력 공급 제도’ 개선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데이터센터가 인근 발전소에서 전력을 공급받을 수 있도록 법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는 단순 편의가 아니라 전력 수급 안정성과 효율성, 나아가 탄소중립 목표까지 관통하는 구조적 문제다. 울산은 LNG 열병합발전소를 기반으로 AI 데이터센터를 구축 중이나, LNG 의존만으로는 국제 규제와 탄소 비용을 피하기 어렵다. 재생에너지, 수소, 원자력 등 다양한 무탄소 전력원을 활용할 수 있도록 제도를 유연하게 설계해야 한다.
세계는 이미 움직이고 있다. 미국과 유럽은 민간 기업이 송전망 계획 단계부터 참여하도록 제도를 바꿨다. 우리는 여전히 ‘전력망은 공공이 알아서 공급한다’는 낡은 인식에 머물러 있다. 그 사이 기업은 전력 지연으로 사업을 재검토하거나 철수하고, 지역경제 효과는 반감된다.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은 결국 정전 위기와 산업 투자 회피로 이어질 뿐이다.
AI 시대의 경쟁력은 데이터센터에서, 데이터센터의 경쟁력은 전력 인프라에서 나온다. 울산처럼 대규모 데이터센터 수요가 몰리는 지역에는 송전망과 발전계통이 동시에 확충돼야 한다. 정부는 전력을 단순 유틸리티가 아닌 국가경쟁력의 자산으로 인식하고, AI 산업 정책과 전력 전략을 하나로 묶는 패키지 정책을 서둘러야 한다. 울산시 역시 중앙정부와 기업을 잇는 적극적 조정자 역할을 자임해야 한다.
전력 없는 AI는 공상에 불과하다. 준비하지 않으면 늦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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