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 시커먼 총각들은 우리 마을에 와 왔는고?”
지난 9월26일 울주생활문화센터에서 열린 ‘울주로일상 예술창작소’ 결과공유회에서 한 주민이 예술가들을 처음 만났을 때 가졌던 소회를 전하며 남긴 말이다. 낯선 예술가들이 두서면 인보리 마을에 들어오자 처음에는 경계와 의문이 앞섰지만, 시간이 흐르자 주민들의 마음은 서서히 열리며 마을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울주로일상 예술창작소’는 울주문화재단이 올해 새롭게 선보인 생활밀착형 커뮤니티 아트 프로젝트다. 타지역에서 온 예술가들이 한 달간 울주에 머무르며 지역의 공간과 사람, 이야기를 탐구하고 창작하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작품에 담아냈다. 박상현 작가는 울주의 정서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가상의 과자 ‘상상 과자에 깃든 울주 이야기’를 선보였고, 조성원 작가는 마을 어르신과 아이들의 숨결을 모은 지도 ‘인보, 노인을 위한 마을의 숨결 지도’를 만들었다. 한혜지 작가는 책을 매개로 한 ‘공공 흔적 도서관’을 통해 공동의 기억을 이어 가는 시도를 펼쳤다.
짧다면 짧은 한 달, 센터에서 매일같이 마주쳤던 주민과 예술가들은 어느새 밥상을 함께 나누며 아직 오지도 않은 이별을 벌써 서운해할 만큼 가까운 이웃이 됐다.
얼마 전 필자는 한국 창작 뮤지컬 ‘어쩌다 해피엔딩’의 박천휴 작가와 윌 애런슨 작곡가를 만났다. 제78회 토니상 주요 부문을 휩쓴 그들은, 긴 무명 시절을 넘어설 수 있었던 배경으로 ‘한 민간문화재단의 뮤지컬 리딩 지원’을 꼽았다. 지역 내 다양한 문화예술 인프라를 기반으로 새로운 창작 시도를 할 작은 기회가 제공된다면, 전국의 예술가들이 울산으로 모여들 것이며, 이는 먼 훗날 세계적인 문화콘텐츠로 이어지는 초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매년 많은 지자체가 수억원을 들여 유명 가수를 대표로 한 행사를 개최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관광버스에 실린 팬들과 일시적인 소비뿐이다. 정작 이러한 문화예술행사가 지역의 문화적 뿌리를 키우거나 예술인들을 성장시키는 데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예술대학이 없는 울산’이나 ‘지역 청년 유출’을 한탄하기보다, 전국의 예술가들이 지역의 매력을 직접 체험하고 이를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낼 수 있는 작은 환경과 지원을 마련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진행한 ‘울주로일상 예술창작소’는 그 해답을 찾아가는 여정의 첫걸음이라 할 수 있다.
문화예술은 단기간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어렵다. 하지만 지역이 진정으로 문화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주민들이 문화를 단발적 이벤트가 아닌 일상의 자연스러운 호흡으로 경험하고, 주민이 단순한 소비자를 넘어 문화의 생산자이자 주체로서 설 수 있는 다양한 기회가 필요하다.
앞으로 울산에서 이러한 예술을 통한 지역의 미래를 바꾸려는 거시적이고 지속적인 시도가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김잔디 울주문화재단 생활문화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