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기후위기 대응을 명분으로 추진해온 ‘기후대응댐’ 계획을 전면 재검토하면서 울산의 회야댐 수문 설치 사업이 중대한 기로에 섰다. 문제는 이런 정책 변동이 단순한 행정 절차의 수정이 아니라 울산 시민의 불안을 외면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회야댐은 수문이 없어 만수위(31.8m)를 넘으면 여수로로 물이 자연스럽게 흘러넘치는 구조로 조성됐다. 그동안 계획홍수위(34.3m)를 초과하는 위기 상황이 반복돼 왔고, 2016년 태풍 ‘차바’ 때는 수위가 34.5m까지 치솟아 실제로 하류 주민 대피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울산시가 기후대응댐 공모 당시 수문 설치안을 제출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자 정부 정책도 바뀌었고, 회야댐 수문 설치 사업도 함께 멈춰섰다.
기후대응댐 사업은 불과 1년 전만 해도 환경부가 직접 추진 의지를 강조했던 대표 사업이었다. 짧은 시간에 내린 비를 대형 댐에 가둬 홍수를 막고 가뭄기에 용수로 활용하겠다는 명분이었다. 그런데 반년 만에 환경부는 스스로 결정을 뒤집고, 전임 정부 탓을 하며 사업을 중단했다. 스스로 ‘정밀한 대안 검토 없이 추진했다’는 평가까지 내렸다. 추진 주체가 바뀐 것도 아닌데, 정권 교체만으로 정책 방향이 뒤집힌 셈이다.
울산은 이런 정권 따라 흔들리는 물 정책의 피해를 유독 반복해서 경험해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운문댐 물 공급 문제다. 2021년 낙동강유역물관리위원회가 운문댐 물을 울산에 공급하기로 의결했지만 정권 교체 후 협정이 해지돼 사업은 멈춰섰다. 대구 취수원 이전 논의만 진척됐을 뿐 울산은 수년째 제자리걸음이다. 반구대 암각화가 올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음에도, 근본적인 물 문제 해결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울산은 반구대 암각화 보호를 위해 사연댐 수문 설치 후 하루 약 4만9000t의 물을 방류해야 한다. 이는 울산시민 하루 평균 사용량(37만t)의 13.5%에 해당한다. 현재도 사연댐 수위를 조절하기 위해 물을 흘려보내고 있는데, 수문이 설치되면 낙동강 물 의존도가 더욱 커지고 비용 부담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 울산시는 운문댐 물 7만t을 기대하고 있지만, 김성환 환경부 장관이 “흘려보내는 만큼만 공급하는 것이 상식”이라고 밝힌 바 있어 전망은 밝지 않다.
더 큰 문제는 환경부의 현장 인식 수준이다. 김 장관은 지난 8월 울주군 반구대암각화 현장을 방문했을 때 지역 댐 이름조차 혼동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역 실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정책 번복’을 거듭하는 중앙정부의 태도에 울산 시민이 느끼는 박탈감은 작지 않다.
기후위기 대응은 단기간의 정치 일정에 따라 흔들려서는 안 되는 장기 과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물 정책이 뒤집히고 그 부담을 지역이 고스란히 떠안는 구조가 반복된다면 운문댐 물 공급 문제는 앞으로도 ‘기약 없는 논의’로 남을 수밖에 없다. 정책의 일관성과 책임성, 그리고 지역 현실에 대한 진지한 이해가 필요하다.
석현주 사회문화부 차장 hyunju021@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