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을의 중턱을 넘어서고 있지만, 대기는 여전히 여름의 습도를 품고 있다. 추석 연휴 내내 비가 이어졌고, 연휴가 끝난 뒤에도 맑은 날보다 흐린 날이 더 많았다. 지난 9월 울산은 30일 중 20일 동안 비가 내렸고, 10월 들어서는 이틀을 제외한 날 동안 계속 비가 내리고 있다. 이미 전국 평균 강수량은 평년치를 웃돌며 ‘가을비’라 부르기에는 지나치게 길고 그 양도 너무나 많다.
보통 가을비는 기압골이 통과하면서 하루 이틀 정도 약하게 지나고 만다. 하지만 올해는 한 번 내리기 시작하면 길게 이어지고, 짧은 시간 집중호우로 변하는 경우도 많았다.
기상학적으로 보면 전형적인 가을형 강수가 아니라, 열대형 강수의 특성이 강하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해수면 온도와 대기 에너지의 비정상적 축적 때문이다. 올해 남해와 동중국해의 해수면 온도는 28~30℃로, 평년보다 1~2℃ 높게 유지됐다. 이는 단순한 수온 상승이 아니라 대기 중 수증기 공급량을 10% 이상 늘리는 수준의 변화이다. 따뜻한 바다는 끊임없이 수증기를 증발시켰고, 북쪽의 찬 공기와 만나 대류활동을 강화했다. 결과적으로 가을비는 여름비의 구조로 내리고 있다.
기압계의 흐름도 달라졌다. 북태평양고기압은 예년보다 늦게까지 세력을 유지하며 한반도 남쪽에서 열대 수증기를 계속 끌어올렸다.
반면, 시베리아 고기압은 약하고 불규칙하게 나타났다. 즉, 여름의 기압계가 가을까지 이어지고, 가을의 기압계는 제때 자리를 잡지 못한 것이다. 이로 인해 남북 온도차가 커지며 불안정한 대기 흐름이 반복되고 있다.
다음주는 수 일간 이어진 비가 그치기는 하지만, 하늘은 비를 멈추는 대신 급격한 기온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주말부터 북서쪽의 찬 공기가 확장하면서 울산과 경남의 아침 기온은 10℃ 가까이 떨어지고, 일부 내륙은 10℃ 이하로 떨어질 전망이다.
불과 일주일 전 낮 기온이 30℃에 가까웠던 걸 감안하면 기온 폭은 20℃에 달한다. 절대적인 추위보다 더 큰 부담은 이런 상대적인 급변이다. 기온이 급격히 떨어질 때 우리 몸은 순환기와 호흡기 반응으로 면역력이 일시적으로 저하된다. 기후의 변화가 건강의 변수로 이어지는 이유다.
올해 가을의 기상은 단순히 ‘비가 많았다’는 통계로 설명되지 않는다. 여름의 잔열, 해양의 고온, 장기화된 수증기 순환이 가을의 성격 자체를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기온은 여름 수준인데 강수 패턴은 장마를 닮았고, 달력만 가을일 뿐 대기는 여전히 여름의 구조 속에 있다.
가을비는 더 이상 낭만의 상징이 아니다. 계절의 불균형을 드러내는 기후 신호이자, 지구의 에너지 시스템이 불안정해졌다는 경고이다. 하늘은 계절의 이름을 그대로 두었지만, 그 안의 내용은 이미 바뀌고 있다.
맹소영 기상칼럼니스트·웨더커뮤니케이션즈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