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는 개인의 야망이 어떻게 세계를 뒤흔들고 파멸로 귀결되는지를 반복적으로 증명해 왔다. 아돌프 히틀러의 성장과 몰락은 운명의 극적인 반전이 어떻게 펼쳐지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그는 유럽을 정복할 듯한 기세로 전 세계를 뒤흔들었지만, 종국엔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이러한 과정은 군사적 패배를 원인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운명의 복잡한 작용에서 일어난 결과로 볼 수 있다. 운명은 우리에게 개인과 역사의 흐름을 어떻게 조율하는지 철학적인 고찰에 잠기도록 이끈다.
1889년 오스트리아 브라우나우암인에서 태어난 히틀러는 중산층 가정에서 성장했지만, 어린 시절부터 가정 폭력과 학업 부적응을 겪었다. 예술가를 꿈꾸던 그는 빈 미술 아카데미 입학에 실패했다. 이것이 그의 인생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이끌었던 동기(動機)이다. 만약 그가 화가로서의 길을 걸었다면 역사는 또 다른 형태로 전개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에게 선택을 바꾸도록 강요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그는 극단적 민족주의에 심취했고, 독일의 패전이 그에게 분노와 절망을 더욱 심하게 만들었다. 이 시점부터 예술이 아닌 정치로 방향을 전환했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혼란에서 히틀러는 자신의 이념을 퍼뜨릴 기회를 엿보았다. 1923년 뮌헨 폭동이 실패하며 한때 감옥에 갇혔지만, 오히려 그에게 <나의 투쟁>을 저술할 계기와 기회가 되었다. 패배를 겪으면서 확고한 신념을 다진 그는 1933년 독일 총리로 등극하며 나치를 권력의 중심에 세웠다. 이때 그는 자신의 의지가 역사의 흐름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고, 한 개인의 결단이 운명을 거스를 수 있다는 생각에 빠졌다.
그러나 세상은 개인의 의지로 좌우되지는 않는다. 히틀러는 독일을 재무장시키고 유럽 정복을 시도하며 모든 것이 계획대로 진행되는 듯 보였다. 1939년 폴란드 침공을 비롯하여 전례 없는 속도로 유럽을 장악했고, 프랑스를 함락시키며 유럽의 패권을 손에 넣었다. 그러나 이러한 승리는 후에 패망의 원인이 되었다. 그의 실책은 소련 침공이었다. 나폴레옹조차 패배했던 광활한 러시아대륙의 현실을 무시한 채 히틀러는 독일군을 스탈린그라드와 레닌그라드의 지옥으로 몰아넣었다. 1941년 겨울의 혹한과 소련의 반격으로 독일군은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이를 계기로 그는 급격히 내리막길에 접어들었다. 군사적 실수도 있지만 자신을 완벽한 존재로 착각한 오만과 과신의 결말이었다. 세상은 개인적인 자만감만으로는 용납되지 않았다.
전황이 불리해지자 히틀러는 점점 비이성적인 결정을 내리기 시작했다. 미영 연합군이 노르망디에 상륙하고 독일 본토로 진격하는 동안에도 그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망상에서 허우적거렸다. 1945년 4월, 소련군이 베를린을 포위하자 끝까지 저항할 것을 명령했지만 전세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였다. 결국 4월30일, 지하 벙커에서 극적인 멸망을 맞이했다. 한때 세계를 지배하려 했던 인물의 최후는 철저한 고립과 절망에서 이루어졌다.
그의 사망은 역사적 사건이면서 운명의 법칙이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서 한나 아렌트와 칼 야스퍼스의 사상이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아렌트는 유대인이면서 독일을 탈출하였던 사람으로 악의 평범성을 강조하였다. 히틀러 시절 유대인 대량 학살의 책임자였던 아돌프 아이히만과 같은 선량하고 평범한 인물들이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어떻게 폭력을 일상적으로 정당화하는지를 설명했다. 히틀러는 자신의 신념을 절대적 진리로 받아들이고, 윤리적 책임을 무시한 채 오직 힘의 논리로만 행동했다. 그러나 역사는 그러한 무책임한 폭력이 지속될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히틀러의 지향은 주로 전쟁과 정복을 위한 것이지만 그 결과는 파국으로 이어졌다. 즉, 그의 최후는 패배가 아니라, 본인이 초래한 종결이 된 것이다. 운명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흐름으로 여기기도 하지만, 인간의 의지 또한 한 요소로 작용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성격이 곧 운명이다”라고 하였다. 히틀러는 세계와 역사를 바꿀 수 있다고 믿었지만 자기 운명의 작용을 간과하였다. 운명은 밤하늘의 별처럼 멀리서 바라보는 대상이 아니라 바로 각자의 가슴에 숨 쉬고 있다.
김진 김진명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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