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산 울주군 두동면 월평마을. 산자락을 따라 이어진 좁은 길을 지나면 낯선 풍경이 펼쳐진다. 푸른 들판 사이 잇따라 들어선 대형 축사들과 축사 특유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깨끗한 공기와 조용한 환경이 좋아 이사 왔는데, 이젠 창문조차 쉽게 열 수가 없네요” 주민의 푸념은 이곳의 현실을 압축한다.
이 마을은 일명 ‘가축 사육 거리제한 조례’ 개정 이후 생긴 대표적인 ‘풍선효과’ 지역이다. 지난 2015년 울주군이 주거밀집 지역으로부터 250m 이상 떨어져야 축사 허가를 받을 수 있도록 조례를 강화한 결과, 축사 설치가 가능한 지역이 두동·두서 등 일부 지역으로 제한됐다. 그 결과 군 전체에 고르게 분산돼야 할 축사들이 특정 마을로 몰리며 주민 갈등이 커졌다.
울주군 전체 한우 사육두수 중 월평마을이 차지하는 비중은 불과 10년 사이 두배 이상 증가했다. 조례의 목적은 주민 생활권 보호였지만, 결과적으로 일부 지역의 환경 부담을 가중한 셈이다. 이 같은 현상은 축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군의회가 추진한 ‘태양광 발전시설 이격거리 강화 조례’ 개정안도 유사한 논란에 휩싸였다. 군의회는 마을 주변 경관 훼손과 빛 반사, 소음 피해를 이유로 정부 권고안(100m)보다 훨씬 강화된 300m 기준을 논의했다.
다수 의원은 “이격거리만 늘리면 오히려 특정 지역으로 시설이 쏠리는 풍선효과가 생긴다”며 신중론을 폈다. 태양광 발전시설 설치 가능 구역이 축소되면, 개발업자들이 규제가 덜한 산간이나 취약지역으로 몰려가 또 다른 환경 훼손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의 본질은 ‘규제의 방향성’이다. 규제는 필요하지만, 그 기준이 단순히 거리나 숫자에 머무르면 결국 부담은 특정 마을로 전가된다. 주민들은 “법이 마을 경계 하나 차이로 우리를 희생양으로 만든 셈”이라고 토로한다. 조례의 선의가 누군가에게는 보호막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족쇄가 되는 셈이다. 행정의 ‘형평성’은 숫자로 보장되지 않는다. 지역별 환경 여건과 지형, 주거 밀도, 주민 수용성 등 현실적 요소를 반영해야만 진정한 의미의 공공 규제가 된다. 하지만 현행 제도는 모든 지역을 동일한 잣대로 평가하며, 그 사이에서 균열이 생기고 있다.
환경과 개발의 갈등은 언제나 첨예하다. 하지만 규제의 목적이 ‘피해의 이동’이 아니라 ‘피해의 해소’라면, 행정의 시선은 한층 더 입체적이어야 한다. 단순히 거리 확보로 문제를 덮는 대신, 입지 타당성 분석과 주민 협의 절차, 지역별 환경영향평가 의무화 등 다층적 접근이 필요하다. 울주군의 사례는 우리 사회가 지역 정책을 설계할 때 ‘균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운다. 조례의 취지는 언제나 옳다. 그러나 정책은 의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조례가 만들어낸 풍선이 터질 때, 그 바람은 언제나 가장 약한 곳으로 향한다.
신동섭 사회문화부 기자 shingiza@ks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