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젊은 나이임에도 참 오래 살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남편의 죽음 후에 홀로 남겨진 그녀의 삶은 고단했었다. 친정은 출가외인이라는 이유로 그녀의 고단한 삶을 외면했고, 시댁은 청상과부인 그녀에게 은근히 죽음을 요구했다. 며느리의 죽음을 통해서 가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그때 죽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의 품을 떠나서 여자로서의 삶을 살기 시작한 이후로는 남편이 죽기 전까지 한 달과 천동을 만나고 나서 열 달 정도 함께한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특히 천동과 함께한 시간은 그녀가 죽으면서도 이 세상에 태어났음을 후회하지 않게 하는 유일한 이유가 되어 주었다. 그래서 그녀는 이 수치스러운 김 초시와의 생활을 청산하고 미련 없이 생을 마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마음속의 정리를 마치자 가슴으로 연모했었던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녀는 조용히 이승의 끈을 놓았다. 아침에 주인인 김 초시에게 문안을 드리던 꺽쇠에 의해서 그녀의 주검이 발견되었다. 그는 꽃다운 나이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마님이 불쌍해서 목놓아 울었다.
“마님! 이게 무슨 일이데요. 어쩌자고 이리 황망히 떠나신 겁니까?”
그의 울음을 들은 김 초시는 부스스 일어나서 마루로 나서다가 흠칫 놀랐다. 부인인 국화의 시신이 대들보에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시신을 본 그는 이내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인을 시켜서 시신을 끌어내린 후 그는 마루에 눕혀진 시신을 발로 툭툭 차면서 한마디 악담을 잊지 않았다.
“썩을 년. 감히 뉘 집에서 자진이야.”
죽음이 그녀에게 평안을 가져다 준 것일까? 그녀의 얼굴은 평시보다 더 고와보였다. 분노를 가라앉히고 죽은 마누라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니 생시보다 더 예뻐 보였다. 김 초시는 생각할수록 그녀가 너무 아까웠지만 시신과 살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돈을 들여서 장례를 치러줄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래서 부인의 시신을 장사지내지 않고 꺽쇠를 시켜서 뒷산에 몰래 내다버렸다. 감히 자신의 집에서 재수 없게 자살한 년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거지 움막 같은 집에서 상놈들과 지내던 것을 데려와서 번듯한 집에서 등 따시고 배부르게 해 주었는데, 복에 겨워 요강을 깬 년이라는 생각에 울화통이 터져서 산짐승에게 시체가 갈기갈기 찢기도록 하였다. 명색이 사대부의 후손이라는 자가 시정잡배보다도 못한 행동을 한 것이다. 김 초시는 잡놈 중에서도 개잡놈이었다.
서방님이 일찍 죽어서 청상과부가 된 국화는 그동안 수없이 많은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악착같이 살아왔었는데, 결국은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 한 많은 인생을 마감한 것이다. 김 초시의 행동은 그가 정말로 그녀의 지아비였는지 의심스러운 것이었다. 양반이라는 허울을 쓴 작자의 행실이 도성의 주상 이연과 똑 닮아 있었다.
글 : 지선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