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에서 열린 제30차 유엔기후변화회의(COP30)에서 한국이 석탄발전 폐지 국제동맹(PPCA) 가입을 공식 선언했다.
석탄발전이 거의 없는 싱가포르에 이어 아시아 두 번째 가입이지만, 한국은 여전히 석탄발전 설비 39.1GW로 세계 7위 규모를 보유하고 있다. 2010년대 중반 약 40% 수준이던 석탄발전 비중은 2024년 30% 안팎까지 내려왔지만 여전히 전력 부문에서 가장 큰 탄소 배출원이다.
정부가 2035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2018년 대비 53~61% 줄이겠다는 새로운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제시한 것과 맞물려, 탈석탄 의지를 국제사회에 분명히 알린 셈이다.
EU의 탄소국경조정제(CBAM)처럼 수출품의 탄소 배출에 비용을 매기는 제도가 본격화되면서 탄소 감축은 이제 기후 대응을 넘어 수출 경쟁력과도 연결된다.
이제 과제는 선언을 실행 가능한 계획으로 구체화하는 일이다. 정부는 현재 운영 중인 61기 가운데 40기를 2040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평균 설비 용량을 감안하면 약 20GW 전력이 사라지는 셈인데, 이는 1GW급 대형 원전 20기에 해당한다.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2038년까지 계획된 신규 원전이 2기에 그친다는 점을 고려하면, 남는 전력 공백을 어떻게 메울지에 대한 세밀한 설계가 필요하다.
교과서적인 해법은 재생에너지와 원자력 확대이나 현실의 제약도 뚜렷하다. 한국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2024년 10%를 조금 넘는 수준으로 세계 평균 30% 안팎에 비해 낮다.
국토의 70%가 산지인 지형, 환경·경관을 둘러싼 지역 갈등, 전력망과 저장 설비 부족 등이 겹치며 태양광·풍력 확대 속도를 제약하고 있다. 원자력은 전체 발전의 30% 안팎을 담당하며 탄소 감축에 기여하지만, 신규 원전 한 기 건설에 10년 이상이 필요하고 사용 후 관리와 안전성, 입지 수용성 같은 과제도 여전히 남아 있다.
반대로 전력 수요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AI는 산업·공공·생활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고, 정부가 ‘AI 3대 강국 도약’을 목표로 추진하는 데이터센터는 전력 수요를 크게 끌어올리고 있다. 전망에 따르면 국내 데이터센터 전력 사용량은 올해 8.2TWh에서 2038년 30TWh 수준으로 약 4배 늘어날 수 있다.
이러한 여건 속에서 2035년 NDC를 둘러싼 시각 차이도 여전하다. 국제사회에서는 한국의 새 목표가 1.5℃ 달성을 위해 필요한 수준에는 다소 못 미친다고 평가하는 반면, 국내 산업계는 기술 여건을 고려하면 상당히 도전적인 수치라고 본다. 산업계 일각에서는 충분한 사전 협의 없이 목표가 결정됐다는 아쉬움도 제기된다. 특히 철강업계가 핵심 감축 수단으로 꼽는 수소환원제철은 상용 설비 도입 시점을 2037년 이후로 보고 있어, 2035년까지 큰 폭의 감축을 이루려면 공정 효율 개선, 연료 전환, 탄소 포집·저장(CCS) 등 다층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각국이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탈탄소 규칙을 자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설계하는 가운데, 우리도 어떤 산업·통상 전략과 지원책으로 목표를 뒷받침할지 분명한 그림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새로 출범한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이름 그대로 기후·에너지·환경 정책의 시너지를 내기 위한 부처다. PPCA 가입과 NDC 상향은 기후 대응 의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출발점이지만, 동시에 전력 수급 안정과 산업 경쟁력, 지역 경제에 미칠 영향을 살피며 속도를 조절하는 것도 필요하다.
기후·환경 규제 논의에 비해 에너지 공급과 인프라 확충 전략이 상대적으로 덜 부각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어, 세 분야를 보다 균형 있게 보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결국 한국이 마주한 과제는 ‘탈석탄이냐, 전력 안보냐’의 이분법이 아니다. 기후위기 대응, 에너지 안보, 산업 경쟁력을 함께 지켜 내는 균형 있는 전환 전략을 어떻게 마련하느냐에 달려 있다. 선언을 넘어 실현 가능한 로드맵과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갈 때, 한국은 AI 전력 시대의 도전에 대응하면서도 탄소 장벽을 새로운 기회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구태훈 KAIST 기술경영전문대학원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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