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30일 오후 3시40분경, 경북 고령군의 한 축사 현장에서 태양광 자재를 인양하던 근로자가 지붕 위를 이동하던 중 채광창이 파손되며 아래로 추락해 숨졌다. 지붕 위에서의 작업은 건설현장 중에서도 추락 위험이 가장 높은 작업이다. 특히 채광창은 겉보기에는 단단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인체 하중을 견디기 어려운 구조로 돼 있다. 이번 사고는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44조(안전대의 부착설비 등)와 제45조(지붕 위에서의 위험 방지) 등 기본적인 안전조치가 미흡했을 가능성이 높다.
비슷한 사고는 올해만도 여러 차례 되풀이됐다. 3월21일 원주시의 축사 현장에서 지붕 보수 중 밟고 있던 채광창이 깨지며 6m 아래로 추락해 사망했다. 8월7일에는 영암군의 지붕 보수 현장에서 작업자가 채광창 덮개 교체 중 채광창을 밟고 12m아래로 추락해 묵숨을 잃었다. 지난 달 20일에도 김포의 공장 리모델링 현장에서 작업자가 지붕 철거 작업 중 채광창이 파손되며 8m 아래로 떨어져 사망한 사고가 있었다. 모두 공통적으로 채광창이나 약한 지붕재 위에서 작업하던 중 채광창 덮개, 안전대 착용, 추락방호망 등 기본적인 추락방지조치가 없었다.
사고의 근본 원인은 명확하다. 첫째, 추락방지시설이 설치되지 않았다. 채광창 위의 덮개나 지붕 하부의 방호망이 없었고, 2인 1조 작업도 지켜지지 않았다. 둘째, 안전대 부착설비(앵커, 지지로프 등)가 없거나, 착용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셋째, 작업 전 위험성평가와 표준작업절차(SOP)가 마련되지 않아 채광창이나 슬레이트 지붕 등 약한 구조물의 위험요소를 미리 파악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현장 관리감독자의 점검과 작업허가 절차가 형식적으로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
해외의 대응은 한층 체계적이다. 프랑스는 INRS(국립산업안전보건연구원) 가이드라인에 따라 지붕 작업 시 채광창 주변에 난간이나 추락방호망을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 또한 노동법에서는 발주자와 시공자 모두가 ‘집단방호(collective protection)’를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개인이 착용하는 안전대는 집단방호가 불가능할 때에만 보완수단으로 허용된다.
캐나다 역시 마찬가지다. 건축·시설안전 기준에 따르면 채광창은 ‘지붕의 개구(opening)’로 분류돼 덮개, 방호망, 또는 난간 중 하나를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 특히 온타리오주에서는 채광창 덮개를 인체 하중을 견딜 수 있는 강도로 설계해야 하며, 방호망 설치 여부는 작업 허가 절차에서 필수 확인사항이다.
이 두 나라의 공통된 원칙은 분명하다. 첫째, 집단방호시설을 최우선으로 한다. 둘째, 개인보호구는 보완수단으로 사용한다. 셋째, 작업 전 위험성평가로 구조물의 강도와 위험요인을 반드시 확인한다.
국내 현장에서도 이러한 원칙이 뿌리내려야 한다. 지붕 작업 전 채광창과 슬레이트 지붕의 상태를 점검하고, 덮개나 방호망 설치 여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지붕 가장자리에는 안전난간을 설치하고, 불가능할 경우 이동식 프레임이나 라이프라인을 활용해야 한다. 높이 2m 이상에서는 반드시 안전대를 착용하고, 앵커나 지지로프에 연결해야 한다. 또한 표준작업절차(SOP)를 마련해 작업자와 관리자가 함께 위험요인을 검토한 후 작업을 허가해야 한다.
교육과 훈련도 중요하다. 작업 전 10분 안전회의를 통해 위험요소를 공유하고, 채광창 위 작업의 특수성과 추락위험을 반복적으로 교육해야 한다. 비상상황 시 신속한 구조를 위한 응급대응훈련도 병행해야 한다. 무엇보다 설계 단계부터 추락위험을 고려해 구조물 안전조치를 반영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지붕 위의 한 걸음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생명을 좌우하는 순간이다. 지붕공사 중 사망자는 해마다 30명 안팎으로, 그중 상당수가 축사나 창고 지붕에서 발생한다. 프랑스와 캐나다처럼 ‘집단방호 우선, 개인방호 보완’의 원칙이 우리 현장에도 자리 잡아야 한다. “조금은 괜찮겠지”라는 생각이 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안전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이며, 생명은 제도보다 습관이 지킨다. 오늘 하루, 그 한 걸음 앞에서 멈춰 서는 용기. 그것이 진짜 안전의 시작이다.
정안태 울산안전(주) 대표이사 전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