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운의 울산인물 탐구(5)]김성훈과 울산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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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운의 울산인물 탐구(5)]김성훈과 울산MBC
  • 경상일보
  • 승인 2025.11.25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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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성운 울주문화원 지역사연구소장

김성훈은 1970년대 초반 울산MBC에서 아나운서와 PD로 짧은 기간 일했지만 지금도 울산 사람들 중에는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그는 방송인으로는 6년 남짓 일했지만 방송국을 떠난 후 각종 사회활동을 통해 울산MBC를 빛냈던 인물이다.

그는 남창 중·고등학교와 한국외대를 거쳐 모교로 돌아와 한 때 영어 교사로 지내다가 울산MBC에 아나운서로 취직했다. 그의 가족에 따르면 그는 남창 중고교 교사 시절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 비싼 녹음기를 사 집에서 매일 발성 연습을 열심히 했다고 한다.

그가 방송사에 입사할 때만 해도 경상도 출신은 표준어 발성이 힘들어 아나운서 지원자를 찾기가 힘들 때였다. 이 때문에 김씨는 아나운서 생활이 힘들었던지 입사 3년 후 PD로 전환했다.

이때 서울로 갈 일이 생겼다. 1978년 10대 총선에서 울산에서 당선되었던 이후락씨가 그를 서울로 데리고 가 국회의원 비서가 되었다.

그는 서울에서 이후락 비서로 있으면서도 울산MBC와 인연을 계속 이어나가 1979년에 울산MBC 서울 소장 그리고 울산으로 온 1981년에는 감사를 잠시 지내기도 했다.

울산에 다시 온 그는 연암동에 자동차 교습소(운전전문학원)를 차려 운영했는데 이것이 대박이 났다. 이때부터 울산의 각종 사회 활동에 기부를 많이 했던 그는 당시 정일근씨가 이끄는 ‘만파식적’ 행사가 자금 부족으로 행사를 못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지원해 다시 만파식적 행사가 지속될 수 있도록 했다. 정씨와 김씨는 경주 남산을 등반하는 늑대산악회 창립을 통해 인연을 맺었는데 김씨는 초대 늑대산악회 회장을, 정씨는 2대 회장, 3대 회장은 이달우씨가 역임했다.

김씨는 특히 자신이 울산MBC 유달훈 사장과 맺은 인연을 소중히 생각했다. 1995년에는 해방 50주년을 기념해 울산 젊은이 50여 명을 데리고 백두산 등 만주 일대의 독립운동 현장을 찾았는데 이때도 절반이 넘는 자금을 김씨가 부담했고 유씨도 동행했다.

이후 유씨가 방송국을 떠난 후 사업 실패로 두서면 선필 마을에 어렵게 살 때도 여러 번 도왔다. 또 경실련에서 최기철 교수를 모시고 태화강 어류 탐사를 한 후 어류를 전시할 어항이 없다는 소문을 듣고 어항 비를 지원해 행사가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외에도 돈이 없어 책을 출간 못하는 울산의 시인과 수필가도 자금 지원을 했다. 태화강 어류 탐사 등 김씨와 사회활동을 함께 했던 전 울산MBC 출신 김잠출씨는 “김씨가 환경단체와 각종 행사에 진심을 갖고 기부하는 것을 보면서 감명을 받을 때가 많았다”고 회상했다.

이처럼 울산 문화 발전을 위해 소리 소문 없이 도왔던 그는 백두산을 다녀온 후 한창 일할 나이인 53세에 심장마비로 생을 마쳐 아쉬움을 남겼다. 울산 남구문화원장을 지냈던 김성룡씨가 그의 동생이다.

장성운 울주문화원 지역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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