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2일은 ‘김치의 날’이다. 한국인의 식탁을 지탱해 온 김치의 의미를 새롭게 조명하는 법정기념일이다. 11월은 김치를 이루는 11가지 재료, 22일은 발효를 통해 만들어지는 22가지 효능을 상징한다. 단순한 음식 기념일이 아니라 ‘기후와 발효’, ‘날씨와 저장문화’가 맞물려 온 한국식 생존지혜의 기록이기도 하다.
김장은 무엇보다 ‘기온의 과학’이다. 대개 일 최저기온 0℃ 이하, 일평균기온 4℃ 이하에서 젖산균이 가장 안정적으로 활동하며 김치가 천천히 익는다. 온도가 조금만 높아져도 발효 속도는 배 이상 빨라지고 맛은 금세 시어진다. 그래서 지역의 기온은 곧 김치 문화가 되었다. 남부지방의 짠맛·젓갈 문화, 북부지방의 담백한 김장 문화는 모두 지역 기온과 저장환경의 결과다. 음식에도 기후의 지문이 찍혀 있는 셈이다.
김장과 날씨가 워낙 밀접하다 보니 가장 큰 수혜자는 김치냉장고다. 김치가 안정되는 0~1℃를 정확히 재현해 전통 김장독의 땅속 온도를 과학화한 제품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제품이 기온 변화에 즉각 반응하는 대표적인 ‘날씨경제 상품’이라는 점이다. 업계에 따르면 11월 평균기온이 1℃ 오르면 김치냉장고 판매량은 6~8% 감소하고, 초겨울 한파가 빨리 오면 매출이 15% 이상 늘어난다. 올해도 기온이 평년보다 높아 김장이 늦어지면서 판매 정점이 12월 상순으로 밀렸다. 기후 변화가 가전·유통·마케팅 전략까지 뒤흔드는 셈이다.
올해 김장비용 상승에도 기후 요인은 크게 작용했다. 가을장마가 길어지고 일조시간이 줄면서 배추 결구가 지연됐고, 10~11월 기온이 평년보다 1~2℃ 높아 고랭지 배추의 품질이 떨어졌다. 배추는 생산량 10%만 줄어도 가격이 30~40% 급등한다. 농촌진흥청은 2040년 고랭지 배추 재배 적지가 94% 감소할 것으로 전망한바 있다. 배추가 ‘기후난민 작물’이 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농업 피해액은 최근 10년간 6조원에 이른다. 단순한 김장 문제가 아니라 농가 생계와 식량안보로 이어지는 심각한 문제다. 국가 차원의 대응도 시급하다. 첫째 기후적응형 재배지 재조정이 필요하다. 강원 고랭지 의존형 구조에서 벗어나 경기·충청 북부 등 새로운 적지를 발굴해야 한다. 둘째 스마트팜 전환 확대다. 미세 온도·습도 제어, 병해충 센서 등 정밀농업 기술이 생산 불안정을 줄인다. 셋째 기후 대응형 농산물 비축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이상 기후로 작황이 흔들릴 때 즉시 시장에 공급할 수 있는 냉장·저온 유통망이 필수적이다.
올해 김장 적정기는 수도권과 중부지방이 11월 하순~12월 상순, 남부 지방은 12월 중순까지로 예년보다 다소 늦을 전망이다. 서리를 맞은 배추의 단맛과 천천히 진행되는 발효가 김장의 맛을 결정한다. 기후는 우리의 식탁을 가장 먼저 흔든다. 김장 풍경의 변화는 그저 계절의 변덕이 아니라, 농업 체계와 식품물가, 나아가 국가 식량안보를 경고하는 ‘전조’일지 모른다. 올해 김장을 준비하며, 다시 한 번 기후 변화와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촘촘히 연결되어 있는지 확인하게 된다.
맹소영 기후칼럼니스트·웨더커뮤니케이션즈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