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플라스틱 화분에서 겨울을 버틴 어린 동백을 아침이라 부르자 ‘옥황장군’ ‘용궁대신’ ‘서보살’ 점바치 골목 간판들을 아침이라 부르자 누군가의 가난, 누군가의 혁명이 네 거름이었다면
그래 거기를 아침이라고 부르자
아미동 비석마을 담벼락에 쌓인 박스들도, 빈 가게를 지키는 금 간 간판도, 돼지국밥집에 노동자들 몰고 들어서는 저녁 바람도, 아득한, 아무리 걸어도 바닥 닿지 않는 어둠도
아침처럼 대답할 것이라
슬프면 돌아오고 있을 사람을 생각하고 그래도 슬프면 그의 지팡이를 기억하고, 아프면 백과사전에서 폭탄먼지벌레를 찾아보고 또 아프면 해부학 사전도 뒤적이고, 힘들면 순간을 그 압축을 보고 더 힘들면 영원을 그 팽창을 보고
막다른 골목에 무료로 배송된 붉은 단풍잎도, 바벨탑에서 떨어진 시인의 가난한 골절상도 다 아침이라고 부르자
아침이라는 호명으로 우리가 아침이 될 수 있다면
긴 죽음에서 돌아온 듯 문득 눈 뜨니
창틀마다 아침이 꽂혀 있다 단검처럼
병오년 아침, 다시 시작되는 희망의 마음
아침을 한자로 단(旦)이라고 하는데, 수평선에서 해가 떠오르는 모습이다. 유난히 추운 날씨지만 간절곶에서, 장생포에서, 대왕암에서 새해 일출을 보려는 인파가 넘쳐났다고 한다. 사람들은 떠오르는 해, 밝아오는 아침에서 희망과 삶의 용기와 한 걸음 나아갈 힘을 얻는다.
아침은 겨울을 이긴 동백처럼 좌절 속에서도 끈질기게 이어가는 생명력이고, 혁명처럼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믿음이다. 어둠 속에서도 희망을 찾으려는 몸짓, 사랑하는 사람의 무사 귀환을 비는 바람, 고통을 피하는 게 아니라 그 원인을 끝까지 밝혀보려는 노력이다. 그럴 때 우리는 고통 속에서도 ‘붉은 단풍잎’ 같은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
‘아침이라는 호명으로 우리가 아침이 될 수 있다면’ 이 아름다운 구절은, 아침은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온다는 것, 우리 스스로 아침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자각이다. 하지만 그 자각은 ‘단검’과 같다. 때로는 날카롭게 우리를 꿰뚫고, 불편한 진실을 직시하게 만들며, 안주하려는 우리를 흔들어 깨우는 저 아침의 밝음, 맑음. 병오년의 아침이 밝았다. 수평선을 벗어나 하늘로 솟아오르는 해처럼, 붉은 말이 힘차게 달리기 시작했다.
송은숙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