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곤의 살며 생각하며(7)]사람의 얼굴
상태바
[김상곤의 살며 생각하며(7)]사람의 얼굴
  • 경상일보
  • 승인 2020.07.07 21: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체중 내면 가장 잘 드러나는 얼굴
아동학대 등 최근 벌어지는 사건보면
인간 본성 파악하기 어렵다는 회의도
▲ 김상곤 전 울산시 감사관

우리가 다른 사람을 만나는 일을 대면한다고 한다. 얼굴을 마주 본다는 뜻이다.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의지를 파악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하는 행동도 그 사람의 얼굴을 살피는 일이다. 얼굴이 다른 신체 부위보다 개인의 내면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슬픔이나 아픔과 같은 고통스런 감정을 즉각적으로 드러내는 부분이 얼굴이다.

우리가 흔히 인간관계라고 표현하는 사람사이의 느낌이 이루어지는 때도 얼굴과 얼굴이 마주하는 순간이다. 그래서 얼굴에서 나타나는 변화 즉 표정에서 많은 정보를 읽으려 노력하고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나이 40이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하고 웃는 얼굴에 침을 뱉지 못한다고 한다. 타인의 얼굴을 보면서 느끼는 특별한 감정 속에서 인간이 지켜야 할 윤리의 기원을 발견해낸 철학자도 있다.

프랑스 현대 철학자 레비나스는 동물적인 자기유지 본능을 넘어서 타인과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윤리적 힘을 타인의 얼굴을 바라보는 일에서 찾는다. 특히 헐벗고 상처받은 타인의 얼굴을 대하는 순간이 우리에게 부여하는 윤리적 힘에 대해서 깊은 의미를 찾아낸다. 그래서 그는 타인의 얼굴을 만나는 일을 ‘윤리적 사건’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참된 인간성의 차원을 열어주는 일종의 계시로 파악했다. 윤리적 의미를 넘어 종교적인 뜻으로까지 확대한 것이다.

이성의 합리성이나 사회계약과 같은 추상적인 이론에서 윤리적 바탕을 찾는 것 보다는 훨씬 공감이 가는 주장이다. 그러나 최근 우리를 경악하게 하는 사건들을 보면서 레비나스의 주장도 인간 본성의 심연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문을 버릴 수가 없다. 민주주의와 학문과 예술의 세계적인 중심을 자처하는 미국에서 백주 대낮에 버젓이 자행되고 있는 경찰의 민간인 살해사건을 어떤 이론이 설명할 수 있을까. 단돈 20달러 위폐범을 찾는다는 미명하에 사람의 숨통을 죽을 때까지 조이는 장면 앞에서 인간성이라는 의미를 어떤 말로 정의할 수 있을지 막막할 뿐이다. 더구나 레비나스가 윤리적 사건이라고까지 의미를 부여한 타인의 얼굴을 직접 자신의 몸으로 뭉개면서 자신의 얼굴에 아무런 동요도 보이지 않는 인간을 레비나스는 무엇으로 설명할지 궁금하다. 흑인의 얼굴은 백인들에게 타인의 얼굴이 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두렵다.

우리 주위에서도 이에 못지않은 무서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 할 말을 잃는다. 자신이 낳은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는 동거인의 어린 아들을 여행 가방 속에 넣고 숨이 넘어갈 때까지 위에서 밟았다고 한다. 사람의 얼굴 중에서도 어린 아이의 얼굴은 그 자체가 아무런 방패막이가 없는 여리고 약한 인간의 표상이고 고통에 한없이 취약한 상처 같은 것이다. 동양철학에서 윤리의 근원으로 삼는 측은지심을 설명하면서 흔히 어린아이를 예로 삼는다. 어린 아이가 물가로 기어갈 때 달려가서 구하는 사람의 심정을 인간의 윤리적 본성으로 설명한다. 그 여린 아이의 얼굴을 향해 자신의 무자비한 힘을 마음껏 행사할 수 있는 사람에게 인간의 본성을 묻는 일은 사치스러운 사변일 수밖에 없다. 우리 이웃 지역에서 어머니가 어린 딸을 굶기고 목줄을 매달아 동물에게도 못할 짓을 저지른 일도 있었다. 부모나 엄마라는 단어가 사랑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은 또 얼마나 기막힌 일인가. 인간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 없이 이 사회의 윤리는 가능하지 않다. 특히 약한 어린이들을 양육하고 보호할 의무가 있는 부모나 교사와 같은 사람들이 타인의 얼굴에 나타나는 고통에 무감하다는 것은 그 자체가 폭력일 수밖에 없다. 어린 생명의 얼굴에 어리는 공포와 절망에 무심한 사회에서 인간의 가치를 추구하고 사회 정의를 세운다는 것은 공허한 이론에 불과할 것이다.

김상곤 전 울산시 감사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울산 곳곳 버려진 차량에 예산·행정 낭비
  • [지역민도 찾지 않는 울산의 역사·문화명소]울산 유일 보물 지정 불상인데…
  • 확 풀린 GB규제…울산 수혜 기대감
  • 궂은 날씨에도 울산 곳곳 꽃놀이 인파
  • [기고]울산의 랜드마크!
  • 이재명 대표에서 달려든 남성, 사복경찰에게 제압당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