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사람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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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사람의 말
  • 이재명 기자
  • 승인 2020.07.07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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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미옥 호계고 교사
칠월부터 반 아이와 아침 산책을 한다. 아이들을 만난 지 한 달이 지났는데도 얼굴과 이름을 옳게 못 잇고 있어서다. 담임으로 자주 엉터리 이름을 부르게 되니, 이건 참 곤란하다. 표정으로 더 많은 메시지가 전해진다는데 종일 마스크를 끼고 생활하니 표정으로 받을 수 있는 메시지는 읽어내기 어렵다. 곧 팔월이 오고 하순에 여름 방학이 맞으니 이래서는 아니 되겠다 싶어 아침마다 한 명씩 가볍게 만나보기로 한 것이다. 조금 일찍 학교 오면, 밤에서 막 깨어난 것처럼 공기가 신선하다. 물기를 머금은 아침 바람 속을 거닐며 나누는 이야기는 절로 싱그럽다.

“마스크 끼고 종일 지내는데 괜찮으냐? 요즘 주로 하는 생각은 뭐고? 누구랑 얘기하면 니 맘이 편하나? 어제 밤에는 몇 시에 잠들었나? 그렇게 힘들 때 니는 어떻게 하는데?…”

천천히 걸으며 학교 뜰을 몇 바퀴 돌며 두서없이 이야기를 나눈다. 이렇게 나누는 몇 마디 말로도 아이가 내 마음 속으로 걸어 들어오는 듯하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내가 준비한 책 한 구절을 펼친다. 김소연의 책 <마음 사전>에서 한 꼭지씩을 꺼내 맛난 음식 나눠 먹듯이 최대한 아름답게 읽는다. 걸으며 나눈 이야기에서 떠올랐던 생각들을 전한다. 어른의 한 사람으로 어린 사람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나 응원하고 지지하는 말을 별거 아닌 듯 그냥 건네 보는 것이다. 산책을 함께 나눈 아이가 다음날 교실에서 보내는 눈빛에는 어떤 메시지가 살아있다.

“‘이해’란 가장 잘한 오해이고, ‘오해’란 가장 적나라한 이해다.” 지난 금요일 아침 산책길에 들려준 구절이다. 서로 이해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오해는 또 얼마나 쉬운지. 우리가 보내는 나날의 삶은 왜 이리 빠르게 지나고, 처리해야 할 일들은 왜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급하게 요구하고 또 실수할 틈도 주지 않은지.

요즘 나는 수업시간에 수행과제로 <사연 담은 시집> 만들기를 하고 있다. 교실 사물함 위 공간에 시집 70여 권을 펼쳐 놓는다. 손가는 시집 한 권을 긴 호흡으로 읽어 보자. 읽다가 ‘야 이 시 참 좋다’하고 와 닿는 시를 만나거든 깨끗하게 공책에 옮겨 쓰자. 아이들은 이렇게 두 세 시간 공책에 좋은 시를 모은다. 모아진 시를 가지고 <사연 담은 시집>을 만든다. 시와 엮을 수 있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 세상에 하나뿐인 시집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사연 담은 시집> 속에는 아이들이 직접 세공한 말들이 보석과 같이 빛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이 빛나는 말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감탄할 날을 기대하며 갈무리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생각하면 할머니와 나는 종이 다를지도 모른다/ 크로마뇽인과 네안데르탈인보다 더 다를지도/ 먹는 것도 사실 소와 사자만큼 다르다/ 골격도 다르고 직립 방식도 다르다/ 우리의 현란하고 뒤틀린 문법 때문에/ 할머니의 말을 해석할 수 없게 되었다/ 무엇보다 다른 점은 나는 손이 두개지만/ 할머니는 세개였다/ 할머니에게 말은 또 하나의 손이었다”(백무산의 ‘사람의 말’ 부분)

사람의 말인 ‘할머니의 말’을 나누고 싶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지 모른다는 게 문제이다.

신미옥 호계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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