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1년 지방의회 선거를 시작으로 지방자치제가 부활했다. 이후 지방자치가 30여 년간 계속되면서 지역발전과 삶의 질 문제에 대한 주민들의 관심은 더욱 커졌다. 자연스럽게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기대와 요구 또한 높아졌는데, 그러한 기대와 요구를 표시하는 대표적인 것은 바로 ‘민원’이다. 신속하고 원만한 민원 처리가 행정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 되면서 민원 전담팀을 꾸리는 지방자치단체가 증가하고 있다.
최근 울산 동구청의 민원 처리 능력에는 물음표가 생긴다. 주민들은 동구 경기가 바닥을 치면서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상황에 거리로 나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각종 사업 과정에서 소통 부족 등 미흡한 점이 드러나면서 집단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전 동구 주전 보밑항 호안 보수보강공사 과정에서 바다에 흙탕물이 생겨 주전 나잠회와 주전어촌계가 집단 반발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특히 공사기간인 6월부터 9월까지는 해녀들이 가장 왕성하게 작업하는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재해관련 긴급공사라는 이유로 동구청은 주민들에게 제대로 된 설명조차 하지 않았다. 주민 30여 명은 보름이 넘게 땡볕아래에서 생업 위협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며 시위를 하고 있다.
지난 5월 남목시장 공영주차장 건립 과정에서도 문제가 생겼다. 주차장을 만들면서 인근 원룸 건물의 언덕을 모두 깎아 버리면서 주민들이 건물 붕괴 위험에 처했다고 반발했다. 지역 언론뿐 아니라 MBC, SBS 등 방송에서 이 소식을 전하며 전국적인 이슈가 되기도 했다. 이 사업은 차량 진입로가 수정되는 실시설계 변경이 이뤄졌는데, 동구청이 이를 주민들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지난 3월에는 3000여 세대가 사는 서부아파트 곳곳에 ‘우리 집 무너진다’, ‘시끄러워 못 살겠다’, ‘균열 간 우리 집 보상하라’ 등 50여 개의 현수막 내걸렸다. 아파트단지 바로 옆에 들어설 대규모 아파트단지 건설로 인한 벽 균열, 소음, 분진, 진동 등의 주거권 침해와 그에 따른 스트레스 발생을 호소했다. 2년 전 이 아파트단지 앞 도로에 싱크홀이 2번이나 발생하는 등 지반이 약한 것으로 알려져 주민들의 불안은 커지고 있다.
집단민원이 제때 해결되지 못하면 관련 사업 집행이 지연되거나 착수조차 못하는 경우가 발생해 그로 인한 경제적 피해가 발생한다. 집단시위로 이어져 상황이 더욱 악화되면 사회적 갈등으로까지 번질 수 있다.
때문에 동구청은 집단민원에 대한 제대로 된 대응에 나서야 한다. 특히 집단민원의 발생자체를 막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앞서 언급한 집단민원 사업지역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가장 우선시 하는 것은 사업 시작 전 동구청과의 소통이다. 문제가 생기고 난 뒤에 해결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사전 차단할 수 있는 행정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법으로 정해진 주민설명회를 열었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사업 초기뿐 아니라 수시로 관계 주민들을 만나 진행상황을 설명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편사항 등에 대해 이해를 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중재자의 역할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아파트 건설과 같은 민간사업자가 진행하는 사업의 경우 법적으로 지방자치단체가 개입할 여지는 적다. 하지만 이해당사자들이 원만하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움은 줄 수 있다. 서부아파트 문제는 사전에 주민들과 시공사가 사업에 대한 소통을 충분히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더라면 지금처럼 현수막으로 아파트 단지가 뒤 덮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성공적으로 집단민원을 관리하면 지방자치의 성장뿐 아니라 사회 발전이라는 성과를 거둘 수 있다. 올해 잇따라 집단민원이 발생한 것은 행정의 부족함이 가장 큰 원인이다. 앞으로 동구청은 같은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철저한 대책을 마련해 진정으로 주민을 위한 행정을 펼치길 기대한다.
박경옥 울산 동구의회 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