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민원인은 “해봤어”라고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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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민원인은 “해봤어”라고 묻고 싶다
  • 김현주
  • 승인 2020.07.30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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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주 사회부 기자

지난해 기자의 가족이 인터넷을 통해 허위사실 유포 피해를 당한 적이 있어 함께 경찰서에 동행했다. 그러나 그 날 사건 신고는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사건 접수를 맡은 경찰이 “허위 사실이 유포된 인터넷 사이트가 해외 업체라 잡기 어렵다”고 계속해 말하면서 신고를 하러 갔던 고소인이 결국 신고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각종 사건을 많이 접하고 다뤄본 경찰의 입장에선 접수되는 사건 내용만 봐도 수사를 통해 범인 체포가 가능할 지 혹은 어려울 지 어느 정도 ‘각’이 나온다고 한다. 여러 사건을 겪어보면서 경험이 쌓였기 때문에 판단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여러 외부 요인으로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기 어려운 사건이 있다. 그런 사건이란 판단이 들면 일부 형사들은 솔직하게 잡기 어렵다고 말하기도 한다. 사건을 수사하기 싫어서는 아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경찰서를 찾은 신고인들은 대부분 절박한 심경에서 경찰서를 찾는다. 자신이 당한 피해를 수사해 정확한 시시비비를 가리고 가해자들에게 정당한 처벌이 내려지길 바라며 찾은 경찰서에서 신고 접수도 하기 전에 “못 잡는다”는 말을 듣는 심경은 어떨까. 비슷한 경험을 한 시민들은 대부분 ‘마땅히 받아야 할 보호를 받지 못하고 소외된 것 같다’는 심경을 전했다.

이는 비단 경찰의 문제만이 아니다. 행정관청 역시 “안 될 거 같다”는 말로 응대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불법 쓰레기를 투기한 투기자를 잡아달라던 민원의 경우 투기 날짜, 투기 시간, 불법 투기자의 인상착의 등을 신고자가 전부 알고 있었고 해당 정보를 행정에 제공하겠다고 밝혔으나 즉각적인 대응은 이뤄지지 않았다. 민원인은 기자에게 “불법투기 재발 방지를 위해 투기자를 잡아야 된다는 생각으로 행정관청에 신고를 했는데 공무원들의 태도는 미온적이었다. 공익을 위해 신고하는 시민들에게 행정이 해보지도 않고 ‘안 될 거 같다’는 말을 하면 누가 공익 신고를 하겠냐”고 되물었다.

물론 민원인 중에는 경찰이나 행정관청이 해결해주기 어려운 민원을 접수하는 경우도 많다. 또 공무원들에게 필요 이상의 친절을 강요할 때도 있다. 취재 이후 만난 상당수의 공무원들이 자신들이 해결해줄 수 없는 일에 대한 지속적인 민원 접수도 많다고 토로했다.

며칠 전 문득 고 아산 정주영 현대창업자가 했던 말이 떠올렸다. 고 정주영 회장은 사업이나 일을 추진할 때 직원이 우물쭈물하거나 어렵다고 얘기하면 “이봐, 해봤어?”라고 되묻곤했다. 해 보지도 않고 타성적으로 생각해 지레 포기하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해결해줄 수 없는 사건이나 민원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취재를 하면서 사례로 들었던 사건들의 경우 일부는 해결 가능성이 분명 있는데도 불구하고 ‘안 된다’는 회피성 답변을 내놓은 듯하다. 설령 민원 해결이 안 될 것 같더라도 절박한 심경으로 혹은 공익을 위해 경찰과 행정관청을 찾은 민원인들에게 해야 될 말은 “안 될 것 같다”가 아닌 “노력하겠다”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김현주 사회부 기자 khj11@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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