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한 명의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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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한 명의 아이
  • 경상일보
  • 승인 2020.08.11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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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미옥 호계고 교사

일주일간의 시험기간이 끝났다. 마지막 시간, 마치는 종소리에 아이 몇이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난다. 그래 얼마나 좋을까, 시험 성적이야 어찌 됐든, 온몸을 옥죄던 시공간에서 벗어나게 됐으니, 환호성이 절로 터지겠지. 짧은 등교 수업 중에도 두 번의 시험은 어김이 없어, 중간시험을 치고 돌아서니 다시 기말시험을 쳐야하는 상황이라 아이도 교사도 힘들었다. 아이들의 환호에 나도 한마음이 된다.

교무실 앞에 한 아이가 서성이고 있다. 수업시간에 단정하게 앉아 경청하던 아이이다. 그 아이가 있는 교실은 공부 시간에 뜬금없이 노래를 부르는 아이, 끊임없이 앞 뒤 옆 아이와 수다를 떨어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 좀 전 내가 했던 말을 다시 묻는 아이, 쉬는 시간까지 교실 바닥에 누워있다 수업이 시작돼도 일어나지 않아 교사가 가서 깨워야 되는 아이까지 한 마디로 ‘대략난감’한 반이다. 그러니 내 눈에 참 고마운 아이로 남아 이름을 알고 있는 아이이다.

“유원(가명)이구나.” 내가 말을 거니, 조용한 목소리로 “네”하고 인사를 꾸벅한다. “유원아, 너 혹시 게임 좋아하나?” 내가 묻는 뜬금없는 말에 조금 억울한 표정이다. “아뇨, 저는 게임 잘 안 하는데요.” “그래, 그렇구나. 니가 낸 ‘사연담은 시집’ 수행 결과물 보고 좀 궁금했거든. 왜 이리 손 글씨가 엉망일까? 평소 게임에 빠져 사는 아이인가? 하고 나 혼자 짐작했지.” “그때 제가 손을 못 쓰는 상황이었어요. 아픈 중에 겨우 쓴 글씨라 그래요.” “아, 그렇나! 그럼 그렇지. 안 그래도 너무 이상하다 생각했었어, 이렇게라도 알게 돼 다행이다. 아니면 내가 너를 오해할 뻔 했네. 그래 지금은 손 불편한 거는 다 나았나?” “아니요, 조금 불편해요. 그때처럼 많이 아프지는 않아요.” 우연히 마주치지 않고, 또 내가 굳이 말 걸지 않았으면 몰랐을 이야기다. 교실에서는 교사가 굳이 말을 걸지 않는다. 그냥 참 고마운 아이로 마음에 남을 뿐이다. 내가 그랬듯이.

유원이가 있는 반에 감독을 하면서, 나는 다시 유원이를 찬찬히 살폈다. 시험 치는 내내 꼿꼿하게 앉아 열심히 풀고 있다. 모든 순간에 정성을 다해 사는 아이로 보인다. 그래서 그런 유원이 모습을 보며 나는 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손 글씨가 그렇게 엉망이던고? 대강 한 것 같고. 그러던 참에 시험을 마치고 교무실 앞에서 만났던 것이다. 유원이와 얘기를 나누고, 내가 아이를 보는 눈이 영 엉터리는 아니라는 생각에 무겁던 마음이 가벼워진다.

내가 만나는 2학년 아이들은 모두 231명이다. 5월에 229명이었는데, 두 명이 전학왔다. “얘들아, 내가 꼭 하는 것 가운데 올해에도 해야지 하고 마음먹은 게 있는데 들어볼래?” “예~” “너희들이 3학년 올라가기 전까지 너희들 이름을 모두 외울 생각인데 성공하겠나?” “에이~! 당연히 못하죠. 우리 반 담임 샘도 우리 이름 아직 다 몰라요.” “그렇나! 그래도 한번 도전해볼 생각인데 도와줘야 한다. 복도에서 내가 너희 이름을 엉터리로 불러도 섭섭해 하지 말고, ‘저 몇 반에 누구인데요.’라고 고쳐주면 좋겠어.” 시험 감독하며 출석부 이름과 아이 얼굴을 맞추어가며 하나하나 외운다.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교육’이 얼마나 큰 말인지 새삼 무겁게 다가온다.

신미옥 호계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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