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혜숙의 한국100탑(30)]영양 현리 오층모전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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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혜숙의 한국100탑(30)]영양 현리 오층모전석탑
  • 경상일보
  • 승인 2020.09.24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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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혜숙 수필가

영양 반변천변에 경사가 났다. 인근의 현리 오층모전석탑이 지난 7월 보물 제2069호로 지정되었다. 신라 말이나 고려 초에 건립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탑은 석재를 벽돌처럼 다듬어 쌓아올린 모전석탑이다. 영양에는 이런 석탑이 여러 기가 남아 있다. 영양이 자랑하는 국보인 산해리 오층모전석탑은 우리나라 모전석탑 가운데 그 원형을 가장 잘 유지하고 있으며 장중한 아름다움까지 갖춘 우수한 탑이다. 상대적으로 현리 오층모전석탑은 그동안 각광을 받지 못했다. 가끔은 완벽함에서 살짝 비켜나 탈속한 듯 자유로움이 좋을 때가 있다. 그래서 소박한 현리 석탑 앞에서 오래 머물게 된다.

현리 오층모전석탑은 언뜻 둔탁한 느낌을 주지만 볼수록 편안하다. 석재를 다듬어 오층으로 쌓아 올렸으나 모서리 돌을 둥글게 처리하여 부드러움을 담았다. 돌과 돌 사이의 한 줌 흙의 힘을 믿고 삐죽삐죽 풀도 제 터전인 양 자라고 있다. 아하, 그래서 걱정 없이 한껏 올려다보며 여유를 부릴 수도 있었구나. 그렇다면 옛날 옛적의 석공은 보리행을 실천한 것이로다.

 

이 오층탑을 보는 재미는 1층 몸돌 남쪽 면에 있는 작은 감실이다. 화강석 좌우 문설주에 당초문을 양각으로 새겼다. 천년의 시간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무늬가 도드라져 보인다. 감실 옆에다 금강역사상을 조각하여 장엄을 나타낸 탑은 여럿 보았으나 당초문은 이 탑에서만 볼 수 있다. 화려하지 않고 단출하여 부처를 향한 오롯함이 그대로 그려진다.

오층석탑 옆에 작은 절집이 있는데 대웅전 문이 굳게 잠겨있다. 건너 선방도 퇴락의 빛이 역력하고 요사채도 비어있다. 오층모전석탑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지정문화재로 새로운 역사를 써 내리고 있는데 빈 절은 그 기쁨을 나누지 못한 채 적막하다. 작은 선방인 일월산방의 주련이 한글이다. ‘여름날 취한 낮잠에/가을은 해와 달을 삼키다’ 여름 낮잠에 제대로 취해 보기도 전에 가을은 성급하게 해와 달을 조금씩 삼키고 있다. 현리 오층모전석탑 앞에서 마당의 키 큰 풀들과 슬몃 가을맞이를 한다. 배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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