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강]부끄러워하는 마음에 관한 상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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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강]부끄러워하는 마음에 관한 상념들
  • 경상일보
  • 승인 2020.10.04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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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인간관계의 출발점은
사소한 잘못이라도 인정하는 것
옳다고 우기는 것은 부끄러운 일
▲ 박기준 전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

산속의 수도승이 아닌 이상 타인과의 관계를 맺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다.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기도 한다. 좋은 이웃을 만나면 행복하다. 실수를 하였음에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힘들어진다. 소소한 일상부터 중대한 이해관계가 얽힌 경우까지 인간관계를 잘 풀어가기는 쉽지 않다. 일상에서 겪게 되는 사소한 일에서도 관계의 어려움에 봉착할 때가 있다. 흔히 일어나는 운전중 접촉사고는 보통 누구의 잘못인지 쉽게 알 수 있어 과실 있는 쪽에서 사과하고 보험 처리하면 된다. 하지만 상대를 잘못 만나면 힘들어진다. 작은 해프닝이었지만 최근 도로상에서 당한 접촉사고의 대물 피해자로서 배상을 받았는데 가해 운전자가 잘못을 시인하지 않아 부득이 전자소송으로 소액심판을 받은 일이 있었다.

편도 4차선 도로의 3차선상을 법정 속도로 신호에 따라 진행하는데 우측 옆 이면도로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차량이 필자 차량을 충격했다. 그것도 우측 뒷바퀴 펜더부분을! 좁은 골목 이면도로에서 나와 중앙 1차선으로 붙어 유턴할 의도로 4개 차선을 가로지르려고 한 것으로써 상대방의 일방적 과실은 명백했다. 그런데 일이 꼬였다. 상대방의 운전이 너무 심하다는 생각에 ‘이 양반, 무슨 운전을 그렇게 해요’라고 말하였는데 ‘이 양반’이라는 말이 화근이 되었다. 나이를 들먹이면서 화를 내고 쌍방과실이라고 주장한다. ‘이 양반’이라는 말을 취소하겠다고 했음에도 주장을 꺾지 않았다. 보험회사 직원이 오고, 경찰 신고에 이어 전자소송 등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양반’이란 말의 대가가 컸다. 미안해 하기는커녕 잘못을 모르는 막무가내식 사람을 만나게 되면 불편해진다.

황당한 피해를 당한 경우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다소 역정을 낼 수도 있을 터인데(욕설을 한 것도 아니고!) 말꼬리를 트집잡고 본체에 대한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사태를 엉뚱한 방향으로 몰아가는 것은 답답한 일이다. 가끔 일상 생활에서 사안의 핵심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지엽적인 것을 꼬투리잡고 시비를 벌이는 불편한 상황을 종종 볼 수가 있다.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에게 정중하게 응대하면 과연 순순히 잘못을 시인받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마저 든다. 사건의 본질은 어디로 가고 사태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면 많은 에너지를 뺏기게 된다.

바른 심성의 사람들은 작은 실수라도 미안해 하고 상대가 잘못을 지적하여 주면 오히려 고맙게 생각한다. 제대로 된 인격과 실력을 갖춘 사람들은 실수를 솔직히 인정하고 작은 잘못도 부끄러워 한다. 반대로 자신의 주장만을 내세우거나 본질적 문제가 아닌 엉뚱한 이유를 가지고 대드는 사람은 후안무치하다. 공연히 불평과 비난을 늘어놓는 사람들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그 자신이 바로 비난받아야 할 행동을 그대로 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에는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사람의 고민은 모두 인간관계에서 온다’고 했다. 인간관계에서 상대의 요구나 지시에 순응적으로 따르면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어려운 일을 마다 하지 않고 맡아서 해주는 양심적인 사람을 무시하기도 하는데 잔인한 성격의 사람들에게서 보여지는 행태다. 이때는 맞대응 전략으로 강하게 응대하면 그제서야 눈치를 보면서 말과 행동이 달라지는 경우를 볼 수가 있는데 이는 간사한 태도다.

합리적 인간관계는 사소한 것이라도 잘못이 있으면 인정하고 미안해 하는 데서 출발한다. 미안해 하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옳고 그름에 대한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을 때에 가능한 일이다. 잘못이 있음에도 옳다고 우기거나 마땅히 부끄러워 해야 함에도 그러한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박기준 전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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