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혜숙의 한국100탑(31)]영양 화천리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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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혜숙의 한국100탑(31)]영양 화천리 삼층석탑
  • 경상일보
  • 승인 2020.10.22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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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혜숙 수필가

자글자글 햇볕 쏟아지는 마당에 고추를 널어 말리고 있다. 그 마당 앞에 자리한 보물 제609호 화천리 삼층석탑 앞에 서 본다. 고요하게 피워 올린 한 송이 꽃처럼 기품은 여전한데 고적감이 휙 돈다. 된서리가 내린다는 상강이 내일모레라 계절 탓인가 보다 했는데 그게 아니다. 탑 저편에서 훌륭한 배경이 되어 주던 기와집이 폐가로 변했다. 솟을대문 앞에는 풀이 무성하고 담도 무너졌다. 상륜부가 모두 없어진 탑과 용마루가 기울어진 지붕을 번갈아 쳐다본다. 탑 언저리에 터를 잡았던 옛 주인은 그만한 뜻이 있었을 터인데 괜히 아쉽다.

9세기 이후, 통일신라의 탑은 전에 없이 많은 조각들이 표면을 장식하게 된다. 화천리 삼층석탑도 조각이 화려하다. 천의를 날리며 손에 무기까지 들고 있는 십이지신상이 초층 기단에 빼곡하다. 상층기단에는 한 면을 탱주로 양분한 다음 팔부중상을 새겼다. 1층 몸돌에는 사면에 사천왕상을 새겼는데 팔부중과 마찬가지로 입상이다. 영양의 반변천 변에 있는 보물 제610호 현리 삼층석탑도 이 화천리 탑과 조각수법이 거의 같다.

부처님을 마음에 담았던 석공이 돌을 쪼고 갈고 매만지면서 고심과 희열로 완성한 탑이다. 저만치 물러나 무심히 바라보다 다시 다가서서 다듬고 손질하기를 수없이 되풀이했을 것이다. 그렇게 정과 망치로 돌 속에서 끄집어 낸 팔부중은 금방이라도 뚜벅뚜벅 풀밭으로 걸어 나오고 악귀를 밟고 선 사천왕은 눈을 번쩍 뜨고 말을 건넬 듯 생생하다.

섬세하게 돋을 새김한 조각과는 달리 화천리 삼층석탑은 상처투성이다. 1층 지붕돌은 추녀가 거의 떨어져 나갔고 3층 몸돌은 제대로 형체를 분별할 수 없다. 할 수만 있다면 묵은 상처를 치유해 주고 싶다. 그 마음을 아는지 가을 햇살은 불그스름한 탑을 찬연스레 비추고 뭉게구름이 가끔 그늘도 만들어 준다. 건너 담장 아래서는 분꽃 씨앗이 툭툭 터져 나오고 지붕에 기댄 감나무엔 감이 붉다. 탑은 그렇게 화천리 사람들과 어우렁더우렁 역사를 써 내리고 있다. 배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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