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강]인간은 존엄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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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강]인간은 존엄한가
  • 정명숙 기자
  • 승인 2020.11.01 2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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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존중 마음은 인간성의 기본

북측의 잔인한 공무원 살해사건은

인간 존엄성 말살의 생생한 사례
▲ 박기준 전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
한때 베스트셀러였던 미국 하버드 대학의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에는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 지도자를 잡기 위한 비밀임무를 수행중인 미군 4명이 민간인인 염소치기 농부 2명과 14세 소년을 풀어준 일로 탈레반의 공격을 받아 미군 십여명이 사망한 이야기가 소개돼 있다. 전쟁 상황에서 붙잡은 민간인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의 상황은 운명적 선택의 순간일 수 있다. 비무장 민간인이지만 놓아주면 미군 소재를 탈레반에게 알릴 수도 있어 치명적인 위험이 될 수도 있다. 실제 미군 4명은 투표 끝에 민간인을 풀어줬고 한시간반쯤 지난 시각에 무장 탈레반 100여명에 포위돼 미군 4명중 3명이 죽고 이들을 구출하려던 헬리콥터가 격추돼 십여명이 더 사망했다는 이야기다.

미군 4명중 살아남은 팀장 하사는 민간인을 풀어준 것이 평생 가장 어리석은 결정이었다고 후회했다. 민간인을 풀어주지 않았어야 탈레반에게 미군의 소재를 알려주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어날 가능성만으로 민간인을 살상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는 엄청난 도덕적 딜레마를 야기한다. 전쟁 영화를 보면 전투 상황에서 맞닥뜨린 포로나 적국 민간인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두고 갈등하는 장면이 나온다. 보통 휴머니즘의 주인공은 풀어주자고 하고, 다른 일행은 자신들에게 위해가 되니 죽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다툰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생명의 존중에 대한 마음이 인간 본성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이다.

전시 민간인 보호의 국제 규약에 따르면 전시 상황에서도 적국 민간인의 살상이 금지된다. 하물며 평시 상황에서 직접적인 위해를 가져오지 않는 민간인의 살상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람의 생명보다 소중한 것은 세상에 없다. 생명 존중의 마음은 인간성의 기본이다. 하지만 지난번 북한 해역에서 피살된 해수부 공무원 뉴스는 전시 상황에서 민간인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의 도덕적 딜레마나 인간 생명의 존중에 대해 고뇌하는 모습과는 너무 거리가 멀다. 월북인지 실족해 떠내려간 것인지를 떠나 차가운 바닷물속 민간인을 총살한 것은 충격적이다. 코로나 방역을 이유로 그랬다 하고 시신을 불태웠다는 말도 있으니 말문이 막힌다.

사람의 생명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일말의 고려나 예의가 없다는 점에서 지독히 잔인하다. 당시 사망자는 부유물에 의지해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구조 요청을 했을 것이다. 추위에 떨면서 죽어갔을 것을 상상하면 몸서리쳐진다. 6·25 전쟁까지 올라가지 않더라도 북한이 저지른 인명 살상 사건은 많다. 판문점 미군 도끼살해, KAL기 폭파, 아웅산 테러, 천안함 침몰, 금강산 관광객 총격 살해 등등. 북한에 대해 인간 생명의 존중과 인도주의를 기대하고, 인명 살상을 둘러싼 도덕적 딜레마를 이야기하는 것은 연목구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인간의 생명이 잔인하게 소멸되는 것을 보게 되면 인간의 존엄에 대한 회의가 일어난다. 한 일본 여행작가가 세계를 여행하면서 인간 생명이 함부로 다루어지는 현장을 보고, ‘인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숭고하거나 존엄하지 않다’고 말했다는데 이 말이 실감난다. 세계 곳곳을 돌아보면서 인간의 존엄과 생명의 존중과는 거리가 멀게 사람들이 대우받거나 생명이 다루어지는 모습을 만나게 되면 그와 같은 생각이 들 수 있을 것 같다.

인간의 생명은 보호돼야 하고 타인의 생명을 함부로 소멸시킬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야수가 아닌 인간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는 진실이다. 야만사회에는 생명에 대한 외경이 있을 리가 없다. 전체주의 독재사회는 인간이 존엄한 존재로 대우받는 것이 아니라 수단으로 취급되고 인간의 생명은 경시된다. 해수부 공무원 피살사건을 보면서 인간의 생명이 한조각 부유물처럼 취급되는 비문명의 야만을 생생하게 목도하게 된다. 박기준 전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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