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곤의 살며생각하며(11)]문수산이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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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곤의 살며생각하며(11)]문수산이 있어 좋다
  • 정명숙 기자
  • 승인 2020.11.03 21: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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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속 휴식·치유 공간으로 자리

문수산 오르며 얻는 경험은 다양

환산 불가능한 경제적 가치 보유
▲ 김상곤 전 울산시감사관
산을 오르는 목적은 사람마다 다르다. ‘산이 거기에 있어 오른다’라고 말할 정도로 등산에서 깊은 의미를 발견한 사람도 있지만 주말의 휴식을 위해 가까운 산을 오르는 도시인들에게 등산은 별다른 준비 없이도 할 수 있는 가벼운 레저 활동이다. 문수산을 오르고 내리는 일도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가능한 그다지 어렵지 않은 산행이다. 그래서 오르는 사람들의 옷차림도 다양하다. 등산화와 지팡이, 등산배낭까지 갖춘 이들도 있고, 물 한 병 들고 운동복 차림으로 오르는 사람도 많다. 심지어 평상복에 구두를 신고 가는 사람도 있다. 문수산에 좀 더 익숙한 마니아들은 맨발로 다닌다. 그렇다고 문수산이 동네 야산처럼 가볍게 오를 수 있는 산은 결코 아니다. 산 정상에 오르면 어느 산 못지않게 깊은 성취감으로 몸과 마음을 채울 수 있다.

문수산이 특별한 주말 계획이 없는 직장인들에게는 가벼운 휴식공간이지만 산자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의약품이 줄 수 없는 효과를 얻어가는 치유의 공간이기도 하다. 자주 다니는 등산로에도 갈 때 마다 마주치는 이들이 몇 명 있다. 뇌질환 후유증으로 한 쪽 손발이 불편한 사람들이다. 불편한 몸으로 천천히 가을 산길을 홀로 걸어가는 모습은 보노라면 덩달아 발걸음이 조심스럽고 마음이 처연해 진다. 부자유스러운 움직임 보다는 그들이 산을 오르면서 느낄 마음의 무게가 먼저 보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산길을 마음의 피난처로 삼은 자신의 모습에서 동병상련의 정을 느꼈을 수도 있다. 속도가 중요한 도심의 거리였다면 타인의 모습을 이렇도록 깊게 바라볼 여유는 없었을 것이다. 숲속으로 난 산길에서는 누구나 마음속의 풍랑이 조금은 잦아들기 때문이리라.

틈만 나면 수시로 산을 찾는 등산 애호가들에게도 문수산은 깊은 산 못지않은 즐거움을 준다. 문수산 등반을 통해서 자신의 신체적 상태를 점검해 본다는 교수와 같이 산을 오른 적이 있었다. 정년이 가까운 노교수는 가장 힘든 등반경로를 따라서 신체적인 한계를 체험하는 전투적인 산행을 즐긴다고 했다.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라도 오를 만큼 문수산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살아 있다는 강열한 존재감을 느끼고 싶을 때는 언제든지 연구실을 떠나 문수산에 오른다고 했다. 그는 사유를 통해서 존재의 근원을 파악하는 철학교수다. 그에게는 문수산이 철학적 사유와 자연적 현실이 조우하는 또 다른 연구실인 것 같았다. 독일 하이델베르크에 있는 철학자의 길도 이런 사람들의 발자취로 만들어 진 것이리라. 그를 보노라면 산은 땀을 흘리고 근육을 강화하기 위해서 오르는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듯 문수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얻는 경험은 다양하다. 개인적으로 이 산을 오르는 이유를 말한다면, 정상에 오르는 즐거움 보다는 내려오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마음의 평화 같은 느낌 때문이다. 올라 갈 때 묶여 있었던 마음의 매듭이 아무런 상황의 변화나 새로운 사유방식 없이도 저절로 풀리는 것을 느끼는 것은 등산 외의 곳에서는 좀처럼 얻기 어려운 경험이다. 신체의 긴장이 완화되면 마음속의 갈등도 어느 정도 헐거워진다는 것을 등산을 해 본 사람은 누구나 안다. 서양 철학자 중에는 정신과 육신은 별개의 것이며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많았다.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는 생각이 바로 존재의 근원이라고 주장했다. 문수산을 내려오다 보면 데카르트는 등산을 해본 경험이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프랑스나 독일 같이 관념론적 철학이 발달한 나라에는 등산의 즐거움을 경험할 만한 산이 거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지난해 독일 만하임에서 체류하는 동안 거의 매일 라인강변을 걸었다. 2시간 정도의 아름다운 산책길이지만 문수산을 내려올 때 느끼는 내면적인 평화 같은 것은 없었던 듯하다. 문수산이 주는 즐거움과 치유의 효과를 경제적으로 환산할 수 있다면 그 액수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을 훨씬 넘어설 것임은 분명하다. 김상곤 전 울산시감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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