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범상의 世事雜談(41)]밥 딜런과 나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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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범상의 世事雜談(41)]밥 딜런과 나훈아
  • 경상일보
  • 승인 2020.11.26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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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가수 밥딜런·유팡키·조빔
자유 추구·시대 저항에 ‘대중 인기’
테스형 신드롬 나훈아의 역할 궁금
▲ 윤범상 울산대 명예교수·음악이론가

포크록(Folk Rock)의 세계적인 전설, 밥딜런(Bob Dylan)은 존 바에즈(Joan Baez)와 함께 1960년대 말, 베트남전쟁 당시 반전가수(反戰歌手)로 유명하다. 그의 노래가 당시 미국인 뿐 아니라, 전 세계인에게 전쟁반대의 들불을 활활 지핀 것은 ‘평화의 갈구’라는 냉전시대말기의 시대적 요구도 있었지만, 내전(內戰)성격의 베트남전쟁이 머나먼 이국땅에서 미국 젊은이들이 목숨을 던져야 할 정도로 의미 있는 전쟁이 아니었다는 점이 더 크다. 소련의 사주와 중국의 지원 하에 발발한 한반도 적화통일 시도와 그에 맞서 싸워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야 했던 한국전쟁과는 그 성격이 근본적으로 달랐던 것이다.

밥 딜런은 노래를 대단히 잘 부르는 가수는 아니었지만, 억제된 감정을 녹여내어 뇌리에 오래 남도록 하는 멜로디의 서정성과 단순성, 천재적 단어선택과 가사의 시적문학성(詩的文學性), 통기타 치며 부르는 그의 겸손하고 진지한 연주자세 등도 큰 몫을 한 게 사실이다. 그리하여 그는 2016년 노벨문학상을 받게 된다. 굳이 밥 딜런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대중연예인, 특히 가수들은 그 영향력이 엄청나다. 몇몇 유명가수의 경우, 대중으로부터의 인기는 거의 종교적 신앙에 필적한다. 그들의 한마디는 명망 있는 정치인이나 학식이 풍부한 대학자(大學者)의 백 마디보다 울림이 더 큰 게 사실이다. 팬들을 고통에서 구하기도 하고 감격하여 밤잠을 못 이루게도 한다. 정부가 입맛에 맞는 연예인들은 화이트리스트에 올려놓고 가까이 두려하고 정부에 반대하는 연예인들은 블랙리스트에 올려놓고 핍박을 가하려는 것은 모두 그들의 이러한 영향력 때문이다.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양분은 누가 뭐래도 자유다. 이성관계가 아무리 복잡변화무쌍하고 성격과 취미와 일상이 아무리 괴팍하더라도 대중은 그들을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라는 관점에서 너그럽게 이해해주는 경향이 있다. 대신에 대중은 그들로부터 그 만큼의 위안과 즐거움을 기대하는 것이다. 반대로 그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특별한 혜택 속에서 마약, 도박, 매춘 등 위법적인 행위를 자행한다면 사회는 그들에게 일반인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운 벌(罰)을 내리게 된다. 아무튼 자유의 구속은 그들에게 있어 사형선고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역사가 증명하듯 독재(獨裁)는 늘 그들의 주적(主敵)이었던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원주민으로서 가수이자 작곡가이며, 기타리스트이자 음유시인인 아타우알파 유팡키(Atahualpa Yupanqui, 1908~1992)는 평생 인디오의 고뇌와 탄식을 대변했다. 안데스지역 농촌지역을 방랑하며 전통음악을 채집하는 등 대중의 인기와 사랑을 한 몸에 받은 저항문화의 지도자였다. 그는 국가사회주의자인 페론정권으로부터도, 뒤를 이은 자유경제주의자 비델라 정권으로부터도 핍박을 받아 유럽으로 영구 추방되어 생을 마감했다. 정치경제 이념이 다른 두 정권 모두 그가 그토록 싫어하는 독재정권이었던 까닭이다.

브라질의 작곡가요, 피아니스트요, 가수인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Antonio Carlos Jobim, 1927~1994)은 보사노바리듬을 만들고 삼바와 보사노바시대를 연 음악사 특히, 재즈음악사에 길이 남을 대가(大家)이다. 브라질에는 그의 일생동안 여러 정권이 난무했다. 조빔은 그와 가까이하려는 정권과 항상 거리를 둔 채, 오직 예술의 길에만 진력했다. 브라질사람들은 지금도 그를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여긴다. 리오데자네이로 국제공항의 이름이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 공항인 이유이다.

대중가수는 자고로 밥딜런처럼 ‘자유, 평화, 평등, 환경과 같은 인간의 기본가치를 부르짖느냐’, 유팡키처럼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이냐’, 조빔처럼 ‘순수예술의 추구냐’라는 세 가지 면에서 존재의 의미가 논의된다. 그들은 자유민주주의 체제하에서는 더 큰 자유를 달라고 외치고, 독재체제에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저항한다. 그들은 늘 정권과는 마주보는 법이다. 그리하여 대중 음악사를 보면 어떠한 정부아래서도 반정부(反政府) 저항가수, 적어도 소정부(疏政府) 마이웨이가수는 있어도 친정부(親政府) 뻐꾸기가수는 없는 것이다.

지난 추석 때 전국을 뒤흔든 랜선 콘서트, ‘테스 형’신드롬의 주인공, 가황(歌皇) 나훈아는 과연 어떤 가수일까? 한국의 밥딜런일까, 유팡키일까, 조빔일까, 아니면 뻐꾸기일까?

윤범상 울산대 명예교수·음악이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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