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강]자기 희생은 숭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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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강]자기 희생은 숭고하다
  • 경상일보
  • 승인 2020.11.29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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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고라’ 속 히파티아의 죽음은
개인 행복 우선시되는 요즘의 세태서
진리를 위한 희생의 위대함 일깨워줘
▲ 박기준 전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

진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어느 시대에나 불의에 굴복하지 않고,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진리와 신념을 수호하려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있어 인류 역사는 진일보했을 것이다. 개인의 이익과 행복이 우선시되는 요즈음 세태에서는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진리와 신념을 지키려는 모습은 퍽 인상적이다. 시류에 영합하고 진실이 외면되는 순간들이 많기 때문일까. 멀리 이성이 온전한 빛을 발하지 못하던 시대에 진리와 신념을 지키면서 담담하게 죽어간 인간의 모습은 장엄하다.

오래전에 스쳐 지나가며 보았던 스페인의 천재 감독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의 영화 ‘아고라’(2009년 작)를 다시 보게 되었다. 로마제국이 쇠락해 가던 4세기 후반 세계 최대 도서관이 영광을 과시하던 제국의 속주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살다 간 한 과학자의 이야기다. 신념과 진리를 지키려다 참혹하게 죽어간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인 여성 히파티아 이야기는 영화 ‘미이라’의 미녀 여배우 레이첼 와이즈가 주연했다는 영화적 재미를 넘어 과학과 진리, 신념, 순교, 희생 등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히파티아는 문화의 상징이자 종교적 공간으로 이교숭배의 거점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서 도서관장인 아버지 테온으로부터 천문학에 대한 교육을 받고 사서로 일하면서 당시 지구 중심 세계관에 배치되는 아리스타르코스가 주창한 지동설과 원추곡선의 연구에 몰두했다. 로마제국이 동서로 분열되자 이를 말세의 징조로 여긴 기독교도의 다수가 신앙에 매진하면서 기독교계 도덕성 수호자들은 유대인과 대립한다. 오랫동안 유대교와 공존한 이교 신앙은 급격히 성장하는 신흥 기독교의 도전을 받아 위기에 직면하고 있었다.

이러한 소용돌이 속에서 히파티아는 이교도 과학의 상징으로서 ‘더러운 이교도, 마녀’라고 몰아세워지고 개종과 세례를 강요받다가 피부를 벗겨내고 시신이 절단되어 거리를 끌려 다니다 불태워졌다. 주님께서 타락상을 보시게끔 해야 한다는 이유로 그랬다고 하니 종교적 잔혹사다. 히파티아를 죽음의 골짜기로 몰고 간 대주교 키릴루스는 알렉산드리아의 권력을 거머쥐고 카톨릭 교회 성인으로 추앙받았다고 하는데 세상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지구 중심 우주관이 지배하던 고대에 ‘지구가 움직인다’는 천문 과학에 대한 진리를 탐구하고 이교 신앙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지키면서 담담하게 죽어간 히파티아를 과학에서도 높게 평가하고 있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은 ‘코스모스(1980년 작)’에서 히파티아의 죽음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파괴와 함께 자연과학의 전통을 끊어버렸고 이후 천문학 발전은 중세 천년의 혼수상태에 빠져 들었다고 서술한다. 히파티아 사후 1200년 지난 17세기에 이르러 요하네스 케플러에 의해 행성의 궤도가 타원임을 밝혀졌다고 하면서 지동설의 연구가 히파티아의 죽음으로 인하여 계속 이어지지 못했음을 애석해 하고 있다.

인간에게 가장 고귀한 가치인 사랑, 봉사와 헌신, 정의의 실천, 용기 등도 바탕에는 자기 희생이 깔려 있다. 희생의 동기는 여러 가지다. 가족을 위한 희생, 조국을 대한 충성이 있고, 종교와 신념을 위한 순교도 있다. 자기 희생은 고결하고 숭고하며 위대하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신을 희생하는 행동의 대척점에는 진실과 사명을 외면하는 사리사욕과 위선 등이 자리잡고 있다 할 것이다.

꽃은 시들어 떨어져야 열매를 맺고, 촛불도 자신을 태워 녹아내리는 고통을 통해 빛을 발하듯이 자기 희생은 새로운 탄생을 낳고 진리의 길을 밝혀준다. 진리와 진실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자기 희생의 엄숙한 순간은 가슴을 찢는 인상과 함께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가져다준다. 픽션이 가미된 영화이지만 과학자 히파티아의 삶과 죽음의 이야기는 진리를 위한 자기 희생의 숭고함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박기준 전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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