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곤의 살며생각하며(12)]가을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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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곤의 살며생각하며(12)]가을노래
  • 경상일보
  • 승인 2020.12.01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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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절제를 품위로 여기던 전후 세대
가을이면 시를 노래한 가곡 절로 나와
랩 즐기는 시대, 진부하게 느껴질지도
▲ 김상곤 전 울산시감사관

나무 가지에 마른 잎이 나날이 줄어들고 바람이 차가워지는 늦가을이 되면 어디선가 들려올 것 같은 노래가 있다.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아 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작곡가 김성태가 대구 피난 시절에 만든 가곡 ‘이별의 노래’다. 고등학교 음악시간에 배운 노래지만 가사 뿐만 아니라 계이름도 아직 기억하고 있다. 미미미 파미레도솔 라시도 파미레. 악기를 배운 적이 없으면서도 이 노래의 계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이유를 알 수는 없다. 그리고 낮게 흥얼거리기만 해도 목이 메어 끝까지 부르지 못하는 까닭도 알지 못한다. 목월의 시와 김성태의 선율이 불러오는 한국인의 가을 정서 때문일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어느 계절에나 자연의 변화가 가져오는 독특한 정서가 우리의 감성을 깨우지만 가을이 일으키는 정서는 다른 계절에 비해 그 색이 깊고 편안하다. 그래서 이 계절에는 누구나 조금씩은 시적이고 음악적인 감성에 젖어 들게 된다. 특히 전후에 태어난 세대들은 대부분 농촌의 자연 속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가을의 정서를 시각적으로 쉽게 떠올릴 수 있다. 기러기가 줄을 지어 날아가는 하늘을 혼자서 망연히 바라본 경험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가을이 되면 이별의 노래가 저절로 떠오르는 것도 아마 이 때문이리라.

이렇듯 한때는 가곡이라 불리는 노래들이 계절의 정서뿐만 아니라 서민들의 기쁨과 애환을 표현하고 어루만지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그래서 봄이 되면 성악가뿐만 아니라 문정선 같은 대중가수들도 가곡 보리밭을 불렀다. 성악가 엄정행이 부르는 가곡 목련화는 3, 4월이 되면 라디오에서 매일 들을 수 있었다. 성악에 문외한인 사람들도 친구의 결혼식 피로연에서 돌아가면서 축가로 가곡을 부르곤 했다. 이런 자리에서 유행가를 부르면 약간 격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감수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개인적으로도 생각하면 아직도 얼굴이 뜨뜻해지는 부끄러운 경험이 있다. 친구의 결혼식 피로연에서 노래지명을 받아 엉겁결에 가곡 동심초를 시작하고 말았다. 결혼식 피로연에 어울리는 노래인지 의문이 들고 특히 그 노래의 고음 부분은 보통 사람들이 흉내 내기 어려운 수준이다. 고함을 지르며 노래를 부르는 것도 힘든 일이었지만 듣고 있는 관객들도 모두 난감해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어떻게 노래를 끝냈는지는 기억나지는 않으나 신부 친구들의 난감한 표정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가곡은 시에 곡을 부친 노래다. 그래서 노래의 가사가 약간은 철학적이고 감정을 표현하더라도 은유와 비유를 통해 슬픔과 기쁨을 절제한다. 개인의 슬픔과 기쁨을 직접적인 언어로 주절주절 표현하는 것은 약간 품위가 떨어지는 일이라 여기던 시대였다. 교양인으로 대접받으려면 시집 몇 권 정도는 읽어야 하고 가곡 몇 곡 정도는 소화할 수 있어야 했다. 지금 젊은이들의 입장에서 약간은 유치한 정서로 평가할지도 모르지만 불과 한 세대 전의 사람들이 가진 정서였던 것은 사실이다. 시로 만든 노래보다 이야기로 만든 랩에서 훨씬 더 깊은 감동을 느끼는 젊은이들에게 비유와 은유 같은 표현은 진부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결혼식장에서도 축가의 대부분이 대중가요이고 심지어 신랑이 직접 부르는 노래의 가사도 지극히 직설적인 사랑노래인 까닭이리라. 신세대들이 부르는 가을 노래도 부모 세대의 그것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그 시대 젊은이들이 느끼는 정서를 공감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나이든 사람들이 가져야 할 자세이다. 자신의 개인적 감성을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로 주장하는 일도 다른 세대와의 소통을 위해 피해야 할 일이다. 그래도 가을이 되면 어쩔 수 없다. 낙엽이 이리 저리 날리는 길을 걸으면서 저절로 나오는 노래는 고등학교 때 배운 가곡이다. 한 낮이 끝나면 밤이 오듯이 우리의 사랑도 저물었네. 아 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김상곤 전 울산시감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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