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찬의 건강지평(63)]식탁 위의 미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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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찬의 건강지평(63)]식탁 위의 미생물
  • 경상일보
  • 승인 2020.12.03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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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문찬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정의학

겨울이 깊어간다. 김장을 끝낸 장독마다 김치가 익어가고, 동치미도 지금쯤 발효의 첫 단계에 진입했을 것이다. 소금에 절여지고 각종 양념에 버무려진 배추는 긴 시간 발효과정을 거치며 다시 새로운 생명체로 살아난다. 김치가 좋은 식품으로 손꼽히는 이유도 살아있는 싱싱한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잘 익은 김치 1g에는 약 1억 마리의 유산균이 살아서 득실거린다(부산대 김치연구소).

음식에 든 미생물은 우리 장 속에 영원히 머무르지는 않는다. 일반적으로 우리 몸에 부족한 미생물을 채워주지도 않는다. 요거트 한 상자를 다 먹어도 타고난 장내 박테리아를 재구성하여 먼 옛날 정점을 찍었던 시절의 장 건강을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광고에서 뭐라고 선전을 했든, 장까지 살아서 가는 박테리아를 얼마나 많이 함유하고 있든 전부 부질없다. 이들은 장내 환경에서 생존할 수 있긴 하지만 오랜 기간 머무르지는 않는다. 그러나 음식물로 섭취한 미생물이 장 속에서 영원히 뿌리를 내리지 않는다하더라도 장내에 머무르는 동안 그들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이로운 무언가를 한다. 이들은 장내 환경을 바꿀 수 있고 언젠가는 그 사람까지도 바꿔 놓을 힘이 있다. 장내 미생물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지는 않더라도 미생물을 함유한 식사를 꾸준히 유지하는 것은 여전히 매우 중요하다(캐서린 하먼 커리지, 식탁 위의 미생물. 현대지성 2020). 여기에 딱 좋은 음식이 바로 김치다.

김치 맛의 독자성은 숙성 과정에서 생겨난 유산균의 종류와 수에 의해 좌우된다. 김칫독마다 서식하는 유산균의 종류가 집집마다 다르다 보니 똑같은 재료로 담갔다 해도 김치의 맛과 향이 조금씩 다른 것이고, 숙성정도에 따라 제각각의 맛과 향을 내는 것은 발효정도에 따라 유산균의 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겨울 식탁의 중심에는 항상 김장김치가 있었다. 겨울이 아니더라도 김치는 변함없이 밥상 위의 빛나는 주연이자 조연이지만, 동물성 젓갈이 발효되며 생긴 풍부한 아미노산은 김장김치에 특유의 감칠맛을 더했고, 동치미의 발효과정에서 생겨난 탄산은 그 맛에 청량함을 더했다. 영혼의 심층부에 각인된 이 맛은 올해도 여지없이 그리움으로 되살아난다. 맛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음식의 맛은 그리움이다. 김문찬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정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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