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 시절을 떠올리게하는 ‘울산의 맛’을 기록하고자 한다. 예전과 똑같은 재료로 옛 맛을 되살리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달라진 자연환경과 새로운 규제가 걸림돌이다. 더이상 구할 수 없는 재료는 최선의 대안으로 진행한다. 조선 최초의 한글요리백과 ‘음식디미방’처럼 친절한 조리법을 곁들여 추억의 맛, 그리운 그 맛을 재현한다.
1급수 시절 태화강서 잡히던 털게
절구에 곱게 찧어 밀가루와 반죽
구수하고 얼큰한 맛 일품 한그릇
동·남해안에서 잡히는 왕밤송이게
털게 수제비와 얼추 비슷한 맛 내
게껍질 블렌더로 갈아야 식감 좋아
고추장·된장 2대1 비율로 끓여야
지역 어르신들로부터 어린 시절 동네어귀 시냇가와 태화강에서 민물 게를 잡아 된장찌개를 끓일 때 넣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민물 게는 크기가 작아 껍질 속 게살을 발라먹기 보다는 국물맛을 좀 더 구수하게 만드는 용도였다고 생각한다. 제대로 다시를 낼 만한 음식재료가 없던 시절이었으니, 냇가에서 건져올린 한두마리 게만으로도 만족스러운 다시맛을 냈을 것 같다.

울산의 사라진 맛으로 ‘털게 수제비’가 한때 언론에 소개됐다. 울산역사문화대전(디지털울산문화대전의 새 이름)에 따르면 털게 수제비는 울산광역시 범서천 주변에서 잡히던 털게를 재료로 한 향토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털게는 태화강의 상류인 범서천에서 잡히는 다양한 수산물 가운데 하나였다고 한다. 냇가에서 잡힌 털게를 절구에 넣어서 곱게 찧으면 점성이 생기는데 이것을 밀가루와 함께 반죽해서 맛국물(멸치, 다시마 국물)에 수제비를 떠서 끓였다고 알려져 있다.
태화강이 청정하여 1급수이던 시절에는 다슬기를 비롯하여 많은 수산물이 태화강에서 채취됐다. 울산의 개발이 본격화된 후 태화강이 오염되면서 많은 천혜의 자원들이 자취를 감추었다. 털게도 언제부터인지 자취를 감추고 잡히지 않게 되어 지금은 추억의 맛이 되어 버렸다.

이렇듯 털게 수제비는 일상생활 속에서 얻을 수 있는 식재료를 다양한 먹거리로 활용한 우리 부모 세대의 지혜가 담긴 전통 식품이다. 맑은 1급수의 물에서 살던 털게를 조리해서 먹었다고 하니 왠지 건강한 보양식이라는 느낌이다. 지금은 태화강이 많이 정화되어 연어와 황어가 돌아오고 있지만 털게는 아직도 잡히지 않고 있다. 그 시절 털게로 많든 수제비를 맛보았던 장년층은 아직도 그 맛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고 있다.
그렇다면 사라진 털게의 맛은 어떻게 재현할 수 있을까.
예전의 ‘털게’가 정확하게 어떤 모양인지, 어떤 크기였는지는 사실 기록이 많이 남아있지 않다. 다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털게’ 음식으로는 북한 함경도 일원의 토속음식이 더 익숙하다. 그 곳에선 12월부터 3월까지 털게를 잡았다. 4월부터는 금어기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윗쪽 지역에서는 이를 찜으로 해서 영양 많고 맛좋은 별식으로 상에 올렸다. 두고두고 먹기 위해 털게장을 담아 먹기도 했다.
요즘 울산 주변 동해안과 남해안에서는 ‘왕밤송이게’라는 게가 잡힌다. 정자대게나 홍게 보다는 가격이 비싼 것이 흠이지만 사계절 내내 상에 올릴 수 있다. 지난 22일 오전 울산농수산물시장에서는 생물 상태의 왕밤송이게 4마리를 2만원에 살 수 있었다. 굳이 털게를 고집하지 않더라도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종류를 같은 방식으로 조리해 먹어도 된다.

이를 수제비로 만들기 위해서는 곱게 찧어야 한다. 다만 아무리 게 껍질이 부드러워도, 잘게 찧는다해도 게 특유의 껍질은 씹히게 마련이다. 이를 방지하려면 블렌더에 물을 붓고 가는 것이 최선이다. 그렇게 얻은 게국물을 밀가루 반죽에 사용하면 국물과 수제비 모두가 맛있는 최상의 한그릇을 만들 수 있다.
수제비 국물은 다시물에 고추장과 된장의 비율을 2 대 1 비율로 맞추어 풀어야 한다. 고추장은 수제비의 칼칼한 맛을 살리는 용도이고, 된장은 혹시 모를 게의 비린내를 잡기위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부족한 간은 아주 적은 분량의 소금으로 맞춘다.
털게로 수제비를 만들었던 이유는 작은 재료라도 그 맛을 대가족이 함께 나누기 위한 살림의 지혜였을 것이다. 지난달 시작한 울산음식디미방 이후 레시피를 좀 더 자세하게 알려달라는 주문이 많았다. 사라진 울산 맛을 이 시대에 굳이 재현하는 작업이 어렵지 않은 일임을 알리고자 했는데 이에 공감하고 가정에서 시도해 보겠다는 의견도 들려줬다. 예전 그대로의 맛은 물론 그 속에 배어있던 가족애와 인간미를 추억하는 일에 좀 더 많은 이들이 동참하기를 기대한다. 이다혜 전문가·울산음식문화연구원장
